몸을 두고 왔나 봐
전성진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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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진 작가, a.k.a 굉여님을 직접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의 애청자이자 굉여님의 팬으로서, 2023년 5월 굉여 님이 볼더링을 하다가 추락해 큰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SNS로 접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몇 주 후 방송된 '영혼의 노숙자 265화 부상당한 우리 굉여의 인권은 바겐세일중! 그래도 웃어~~~(feat. 굉여)' 편의 재생 버튼을 처음 누를 때는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래도 웃어~~~'라고 쓰여 있지만, 정말 웃을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무색하게도, 방송이 시작되자마자 빵빵 터지는 '잼얘'에 정신 없이 웃었다. 그래 뭐 '웃으라고 하는 이야기'이니까 웃어도 되겠지...?


근데 아니었다. 또 다시 몇 주 후 방송된 '영혼의 노숙자 279화 굉여의 문제적 인권회복기' 편에서 굉여님은 265화 방송 직후 청취자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기쁨과 보람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다친 이야기를 남들이 재미로 소비하는 것에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사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것도 굉여님 특유의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굉여님의 두 번째 산문집 <몸을 두고 왔나 봐>를 읽고 나서야 농담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미안했다. 남의 아픈 이야기를 내가 너무 웃으면서 들었구나. 세상에는 아픈 이야기를 웃기게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미처 몰랐구나. '눈물 닦으면 다 에피소드'라지만, 에피소드가 되고 눈물이 마른 후에도 상처나 통증은 남아 있을 수도 있는데 웃느라 못 봤구나. 근데 웃으라고 한 이야기를 듣고 안 웃는 것도 실례 아닌가..? 혼란을 느낀 건 나만이 아니었다. 굉여님 자신도 자기가 왜 이러는지 이상했다. 


"'웃기다'는 칭찬이 쌓을수록 마음이 탁해졌다. (중략) 웃으라고 농담을 해놓고는 막상 웃으니 와락 심술이 나는 꼴이었다."(8쪽) 자기가 먼저 아픈 이야기를 웃기게 해 놓고 사람들이 웃어도 화가 나고 안 웃어도 화가 나는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해서, 저자는 이유를 생각해 봤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자신이 몸과 맺은 관계가 별로였다. 가장 큰 원인은 성장 환경이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면 안 되는 환경에서 자란 저자는 어른이 되어서도 몸이 아프든 마음이 아프든 아프다는 말을 잘 못했다. 그래도 표현은 해야 하니까 아픈 걸 아프다고 바로 말하지 않고 웃기게 말했다. 그런 식으로 다른 감정들도 웃음으로 위장했다. 슬픔, 분노, 죄책감, 수치심, 불안, 절망 등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웃음으로 위장했다. 그러면 사람들도 웃고 자기도 덜 괴로운 것 같았다. 근데 아니었다. 몸 구석구석에 그것들이 계속 쌓이고 있었고, 부상 사건을 계기로 통증이 폭발했다.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저자가 일하는 카페에서 우연히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부상을 입은 손님 '안네'를 발견하고 친구가 되는 과정이다. 사람들에게 아무리 많은 위로와 응원의 말을 들어도 마음에 와 닿았지 않았던 저자는 안네와 부상 부위의 통증이나 회복 과정의 어려움 등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비로소 온전히 이해 받고 공감 받는 기분을 느꼈다. 이 경험을 통해 저자는 고통을 외면하거나 피하는 것보다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고통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회복과 치유에 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릴 때는 고통을 피하는 방법을 잘 몰랐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거든. 그래서 너를 두고 갈 수밖에 없었어. 괴로움을 온전히 느끼기엔 어렸었나 봐. 맞설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으니까. 그저 너에게서 빠져나오는 게 가장 쉬운 방법이었어. 지금의 나라면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도망치지 않고 너와 함께했을 거야. 이제 나는 비로소 어른이라 뭐가 맞고 틀린지 알거든." (63쪽)


저자는 '이제 나는 비로소 어른이라 뭐가 맞고 틀린지 알거든'이라고 썼지만, 솔직히 나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특히 몸에 관해서는 뭐가 맞고 틀린지 잘 모르겠다. 몸이 괜찮은 것 같은데 안 괜찮고 반대로 안 괜찮은 것 같은데 괜찮은 식으로,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배신(?)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다. 어쩌면 이것도 내가 그동안 몸과의 관계를 잘못 맺어왔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나는 언제 어디에 몸을 두고 온 걸까. 저자의 첫 번째 책에 이어 두 번째 책도 너무 좋아서 벌써부터 세 번째 책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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