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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3월
평점 :

성해나 작가의 오랜 팬이다. 첫 번째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을 읽고 팬이 되었고, <두고 온 여름>은 친필 사인본을 소장하고 있으며, <우리가 열 번을 나고 죽을 때>도 최근에 읽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라고 쓰다가 이게 바로 자신이 '혼모노'임을 증명하고(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혼모노란 무엇인가. 혼모노(本物)란 '진짜'를 뜻하는 일본어다. 영어로는 '리얼(real)', 인터넷 속어로는 '레알'과도 비슷하다. 레알의 어원으로 짐작되는 스페인어 레알에는 '진짜'라는 뜻도 있고 '왕실, 왕립'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정통'이나 '적통' 같은 우리말과도 연결이 된다.
그러니까 <혼모노>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에는 진짜냐 가짜냐, 정통이냐 사이비냐, 적통이냐 서계냐를 따지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는 뜻일 텐데, 살펴보면 정말 그렇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세계적인 영화감독 '김곤'의 팬들 중에서도 자신이 '찐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스무드>는 한국계 미국인인 '듀이'가 세계적인 미술가 '제프'의 에이전트로서 한국을 방문했다가 겪는 일을 그린다. 표제작 <혼모노>는 30년 차 박수무당인 '문수'가 자신의 신 할머니가 떠났음을 깨닫기가 무섭게 얼마 전 신내림을 받은 젊은 무당이 앞집에 이사 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는 현재는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는 '남영동 대공분실'의 실제 건축가가 누구인지를 작가가 상상해서 쓴 팩션이다.
흥미로운 점은 네 소설의 중심 인물 모두가 '진짜'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바로 그 욕망 때문에 오히려 망가지고 무너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신기를 잃은 무당처럼 '진짜'로 인정받는 것이 자신의 커리어나 생계와 직결되는 상황뿐 아니라 팬질이나 덕질 같은 취미나 여가 활동에서조차 '찐팬'인지 아닌지로 서열을 매기고 위계를 나누는 식으로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원은 (돈이든 시간이든 열정이든) 유한한데, 무엇을 하든 '찐(=혼모노)'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그걸 위해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삶. 소설 속 인물들의 번민과 추락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나머지 세 소설은 진짜가 되고 싶은 가짜들의 욕망을 그렸다기보다는 서로 양립하거나 조화되기 어려운 욕망들이 충돌하는 상황을 그린다. <우호적 감정>은 어느 농촌 지역의 재생 프로젝트를 맡은 직원들과 지역 주민들 간의 대립을, <잉태기>는 임신한 여자의 원정 출산 여부를 두고 다투는 시어머니와 친부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메탈>은 고등학교 시절 메탈 밴드를 같이 했던 세 친구가 각자 나이를 먹고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 겪는 일을 보여준다. 화제의 책답게 하나같이 잘 읽히고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