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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케이크의 맛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혜진 지음, 박혜진 그림 / 마음산책 / 2023년 5월
평점 :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말도 있지만, 어떤 일들은 안 하고 후회하는 편이 하고 후회하는 편보다 낫다. 대표적인 예가 '말'이다. 감사나 칭찬처럼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드는 말이라면 얼마든지 해도 좋지만, 거절이나 비난, 지적처럼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은 웬만해선 안 하는 편이 좋다. 그러나 살다 보면 상대가 기분 나빠질 걸 알면서도 어떤 말을 해야 할 때나 상대가 기분 나빠질 걸 모르고 그런 말을 할 때도 있고, 그런 말을 듣는 때는 훨씬 더 많다. 김혜진의 소설집 <완벽한 케이크의 맛>에는 그런 말과 그런 말이 빚은 상황이 다양하게 나온다.
<강사의 자질>에서 팬데믹 기간 중에 어렵게 학원 강사로 취직한 '나'는 비염으로 인해 재채기를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안 좋은 눈초리를 받고 급기야 원장으로부터 호출을 당한다. <밀 베이커리>에서 '나'는 단골로 다니는 빵집을 아이가 다니는 수영 강습반 부모들에게 추천했다가 식중독 사건이 일어나 본의 아니게 공범자 취급을 당한다. <재택근무>의 '나'는 아파트 단지에서 소음을 일으키는 할머니에게 이웃과 함께 항의하러 갔다가 할머니의 사정을 알고 찜찜한 기분을 느낀다. <모르는 일처럼>의 '나'는 직장 내 갑질을 고발한 인턴사원의 글을 읽으며 자신이 그에게 했던 말이나 행동을 반추한다.
어떤 사람과는 만나지 않는 편이 만나는 편보다 낫고, 어떤 관계는 지속하지 않는 편이 지속하는 편보다 낫다. 그런 만남, 그런 관계를 보여주는 소설도 있다. <십 년>에서 대학 친구인 두 사람은 우연히 연락이 닿아 오랜만에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좋은 시간을 보내지만 다음 만남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안강에서>의 '나'는 오래전 가족과 절연한 고모를 아버지와 함께 만나러 갔다가 아무리 혈육이라도 세월의 간극을 메울 수는 없다는 걸 깨닫는다. 상대에 대한 호감이나 존중이 전혀 없는 관계를 억지로 이어가면, <수국>의 친구들처럼,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추해질 수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다는 건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고, 그만큼 자제력과 인내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런 사람의 미덕을 보여주는 소설도 있다. 친구의 식물을 돌보다 손을 다쳐도 굳이 말하지 않는 배려(<극락조>), 이따금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지만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 고백을 참는 우정(<완벽한 케이크의 맛>), 상대에 대한 감정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섣부른 판단을 삼가고 서로에게 좀 더 기회를 주는 여유(<호린>). 무엇이든 하는 것이 좋고 많이 하면 더 좋다고 여겨지는 세상에서, '하지 않음'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주는 소설들을 읽으니 신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