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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의 노래 - 2023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1월
평점 :

개인적인 일로 무척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연말이 작년 연말보다 한가롭게 느껴지는 건, 12.3 비상계엄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를 하느라 작년 연말을 거리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때로부터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뉴스에 관련 보도가 나오는 것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그때 그 일을 막지 못했다면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처진다. 그 때 그 일을 막지 못했다면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책이 2023년 부커상 수상작 폴 린치의 소설 <예언자의 노래>이다.
이 소설은 가상의 상황에서 아일랜드에 사는 어느 한 가족에게 벌어질 법한 일을 그린다. 주인공 아일리시 스택은 남편 래리와 함께 네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다. 평범한 이들의 가정에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정부가 일종의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부터다. 교원 노조의 부위원장을 맡고 있던 남편은 경찰에 연행된 이후로 소식이 없고,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인 장남에게는 징집영장이 날아온다. 설상가상으로 아버지는 알츠하이머병 증상을 보이고, 다른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엉망이 된다. 더는 이 나라에서 계속 살 수도 없지만 다른 나라로 떠날 방법도 없는 상황.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소설의 장점은 비상계엄처럼 국가권력이 국민의 주권보다 우위에 서고 인권을 억압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러한 상황이 한 개인 또는 한 가족의 생활을 얼마나 촘촘하고 집요하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자세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저 매일 아침에 같이 밥을 먹고 저녁에 같이 잠들던 사람이 사라진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일상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더는 미래를 계획할 수 없고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되는 것만으로도 한 가족의 일생은 극복하기 힘든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비상계엄을 막았기 때문에 나와 내 가족에게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비상계엄과 무관한 또 다른 사건이나 사고, 질병 등으로 인해 비슷한 피해나 고통을 입은 개인이나 가족이 있을 수 있다. 그런 피해를 막아주고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국가와 정부의 역할인데 그런 걸 기대할 수 없다는 것 역시도 '그때 그 일을 막지 못했다면'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을 터. 그런 생각을 하면 올해는 무슨 일이 있었든 없었든 간에 잘 산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