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을 처방해드립니다
루스 윌슨 지음, 이승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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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꾸는 책 읽기>. 취업 문제로 고민하던 시절에 우연히 읽고 삶의 경로를 전환하게 만든(제목 그대로 내 '삶을 바꾼') 책의 제목이다. 여기, 책으로 삶을 바꾼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이름은 루스 윌슨. 1932년 오스트레일리아 그리피스 출신인 그는 예순 살 생일 무렵 그전까지 상상도 못한 신체적,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 일을 계기로 삶의 경로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 그는 예전 같은 애정은 식은 지 오래인 남편과 졸혼하고 시골의 작은 집에서 혼자 지내며 책 읽기에 몰두했다. 이때 그가 집어든 책이 마침 제인 오스틴의 책들이었다. 


윌슨은 십 대 시절 <오만과 편견>으로 제인 오스틴 읽기를 시작한 이래 평생 열렬한 제인 오스틴의 독자로 살아왔지만,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온갖 희로애락을 다 경험한 이후에 다시 만난 제인 오스틴은 과거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기쁨과 감동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는 그렇게 제인 오스틴 읽기로 일종의 '독서 재활'을 하면서 외적인 성장도 이루었다. 여든여덟 살에 시드니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아흔이 넘은 지금도 독서의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육십이라는 나이를 한계로 규정하고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즐거움을 포기했다면 자신의 삶에서 이런 장면이 펼쳐질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윌슨이 제인 오스틴 읽기를 통해 얻은 기쁨과 감동은 외적인 성취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 <노생거 수도원>, <이성과 감성>,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을 다시 읽으며 각각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자신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 시절의 감상과 지금의 감상을 비교 대조하기도 한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 나오는 매력적인 여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젊은 시절 자신이 동경하거나 추구했던 삶을 다시 떠올리기도 하고, 그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지금보다 훨씬 심했던 시대에도 굴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행복을 찾은 것처럼 자신도 사회적 편견이나 자기 안의 검열을 무시하고 남은 삶을 나답게 잘 살아보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디 아워스>에는 아픈 친구에게 어떤 책을 선물할지 고민하는 인물이 나온다. "그에게 인생 책을 선물하고 싶다. 그가 놓인 위치를 알려주고 그를 양육하고 변화에 대비할 힘을 길러주는 그런 책"이면 좋겠다고. 양육이라는 게 자기 삶을 성찰하고 관계를 탐색하도록 격려한다는 의미라면, 내가 좋은 양육을 받았다고 느끼는 데에는 오스틴 소설의 공이 크다. (30-1쪽)


평생 사랑해온 책을 다시 읽는 행위는 나이가 들어도 처리되지 않은 감정이나 해묵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가령 윌슨은 십 대 시절 <오만과 편견>을 읽으며 열렬한 독서광인 엘리자베스 베넷에게 자신을 겹쳐 보면서 다아시 같은 남자와의 불같은 연애를 꿈꾸었다. 그러나 살아 보니 자신은 베넷이 될 수 없었고 자신이 결혼한 남자 역시 다아시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살아온 삶과 선택한 사랑이 실패인 건 아니다. "소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들은 가능성의 영역이고, 현실의 우리는 우리 나름의 선택을 내리고 이럭저럭 그 선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407쪽) 이 책을 길잡이 삼아 내년에는, 아니 이제부터(!) 오랫동안 미룬 제인 오스틴 전작 읽기에 도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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