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해로외전
박민정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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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여성인 주현은 대학에서 전임 강사로 일하며 학생들에게 소설을 가르친다. 남들 보기에 좋은 직장이고 주현 자신도 어렵게 얻은 자리라서 가능한 한 오래 일하고 싶다. 하지만 비슷한 경력을 지닌 남자 교수와 갈등을 빚고 학생들에게도 부정적인 강의 평가를 받으면서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간다. 설상가상으로 주현이 애써 외면해 왔던 집안 일에도 휘말린다. 주현은 몇 년 전 발표한 소설에 자신의 큰아버지가 재혼을 하면서 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두 딸을 프랑스로 입양 보내고 막내인 아들만 남겼다는 가족사를 폭로해 집안 내에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그 후로 주현은 큰아버지 가족과 연락을 끊었는데, 어느 날 큰아버지의 아들 장훈의 아내와 연락이 닿으면서 졸지에 그들의 딸인 수아를 며칠 동안 맡게 된다. 주현은 요즘 아이답게 발랄하고 적극적인 수아의 모습을 기특하고 예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괴롭힌 학생들의 모습을 겹쳐 보며 두려움을 느낀다. 그러다 우연히 수아가 '프랑스 고모'와 연락을 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 '프랑스 고모'가 자신이 오랫동안 관심 있어 한, 프랑스로 입양된 사촌 언니임을 직감한 주현은 애써 잊으려고 했던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빠져든다.


박민정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백년해로외전>은 박민정 작가의 소설집 <바비의 분위기>에 실린 단편 <신세이다이 가옥>을 장편으로 확장한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신세이다이 가옥>은 한 여성이 외국으로 입양된 사촌 자매들의 방문을 통해 아들 딸 차별이 심했던 할머니와 한 집에 살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이야기로, <백년해로외전>의 프리퀄 같은 내용이다. 가부장제, 성차별이 공기처럼 존재하던 80년대에 태어나 물질만능주의와 경쟁이 만연해 있던 90년대와 2000년대에 학창 시절과 청춘을 보낸 여성이 가정 내, 직장 내 성차별에 부딪혀 산화하거나 그 직전에 다다른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가의 전작인 <미스플라이트>와도 맞닿아 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주현이 자신의 집안 일이기는 해도 직계 가족의 일은 아닌 큰아버지의 가족사에 그토록 연연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 성찰하는 부분이다. 요즘은 아들보다 딸을 선호하는 풍조라고 하지만, 1980년대생인 나 때는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해서 뱃속의 아이가 딸이라고 하면 낙태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 집은 딸만 둘이라서 엄마가 아들 낳으라는 소리를 엄청 들었고, 첫째에 이어 둘째도 딸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지우려고 했다고 한다. 나와 내 동생이 자라는 동안에도 아들 없다는 소리를 지겹게 들었다. 그러니 실제로는 사랑 받는 외동딸인데도 유사시에는 여자라서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를 느끼는 수현의 심정에 공감할 밖에. 아무튼 그렇게 국민의 절반(인 여성)을 등한시한 죄로 한국은 현재 출생률 세계 최저 수준.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가고 있으니 자업자득이라고 할지.  


오랫동안 나는 야엘의 이야기가 내가 간접적으로 겪은 슬픈 가족사를 넘어서길 바랐다. 결코 가족 이야기가 왜소한 소재라서가 아니었다.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 이미지는 비단 1983년의 장선의 이미지가 아니었다. 언젠가 나도 버려지지 않을까 싶었던 두려움, 갓난아기인 수진 언니를 그런 식으로 버릴까봐 전전긍긍했던 엄마의 두려움은 그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시대 때문에 생겨난 것이기도 했다. (304-5쪽)


문제의 원흉은 이 집안의 절대 권력자인 큰아버지인데, 힘도 없고 발언권도 없는 여자들끼리 지지고 볶고 싸우는 모습도 너무 친숙하다(이 집안에서 발언권이 있는 남자는 큰아버지와 주현의 아버지, 큰아버지 아들인 장훈 정도인데, 주현의 아버지는 형 앞에서 비굴하고 장훈은 적극적인 역할을 안 한다). 야엘이 미국에 있는 대학에 다닐 때 친구들이 "한국인들은 정말로 그렇게 애들을 학대해?"라고 질문하면 차마 그렇다고 대답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생부와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가해자를 변호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지만 자신도 그들과 같은 한국인이라서 그들을 비난하면 한국인을 비난하는 게 되고 그러면 자신도 비난 당하게 되는 모순. 왜 이런 모순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몫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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