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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인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 2025년 1월
평점 :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베아트리스는 성공한 은행가의 아내이자 장성한 두 아들의 엄마다. 직업은 없고 사교계 명사들이 가입되어 있는 음악 서클에서 실무를 돕는 정도인 베아트리스는 친구의 부탁으로 폴란드 출신의 콘서트 피아니스트 비톨트 발치키예비치의 수행을 맡게 된다. 비톨트는 고국인 폴란드를 대표하는 음악가인 쇼팽의 해석을 남다르게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베아트리스는 비톨트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 그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고 그의 연주도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그를 만난 후에도 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서 늘 '폴란드인'이라고 지칭한다.
문제는 이 폴란드인이 베아트리스를 보고 첫눈에 반한 것이다. 폴란드인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베아트리스는 당혹스러워 한다. 그럴 만한 게 폴란드인은 48세인 베아트리스보다 스물네 살 더 많은 72세 노인인 데다가, 두 사람은 사는 나라도 다르고 주로 사용하는 언어도 달라서 말도 잘 통하지 않는다. 폴란드인이 자신과 베아트리스의 만남을 단테와 베아트리체, 쇼팽과 조르쥬 상드의 만남에 비유하며 열렬히 구애해도 베아트리스는 그에게 좀처럼 호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런데 왜 자꾸만 폴란드인 생각이 나고, 폴란드인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는 걸까.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존 쿳시의 소설 <폴란드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오가는 연애 감정을 그린 로맨스 소설이기는 한데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은 아니다. 일단 베아트리스가 폴란드인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베아트리스는 자신이 왜 폴란드인을 사랑하지 않는지에 관해 엄청나게 성찰을 한다. 남편이 있기는 하지만 결혼 기간 동안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은 적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폴란드인의 나이가 너무 많기는 하지만 정말 사랑한다면 나이 차는 문제가 아니다. 잃을 게 많다는 것이 아마도 정답에 가장 가까울 텐데, 그렇다고 베아트리스가 현재의 삶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나 좋다는 남자와 새로운 삶을 살아볼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데, 왜 베아트리스는 그에게 끌리지 않을까.
베아트리스가 함께 브라질로 떠나자는 폴란드인의 제안을 거절한 후에도 계속해서 폴란드인과 연락을 주고 받고, 폴란드인을 남편 집안 소유의 별장으로 초대하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종국에는 잠자리까지 허락하는 건, 폴란드인에 대한 관심이나 호감 때문이라기 보다는 베아트리스 자신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고,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재산과 사회적 지위를 갖춘,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베아트리스가, 혹시라도 다른 삶을 선택했다면 어땠을지, 지금보다 만족하고 행복했을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 말이다.
결국 베아트리스는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고 폴란드인은 베아트리스 앞으로 두툼한 시 창작 노트를 남기는데, 폴란드어를 모르는 베아트리스는 전문 번역가에게 번역을 맡긴다. 번역된 시를 읽으면서 베아트리스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데, 요약하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두 사람이 육체의 끌림만으로 사랑하는 건 가능하지만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고, 언어가 통한다고 해도 육체의 끌림이 없으면 상대의 호감이 사랑으로 느껴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언어도 통하고 육체의 끌림도 있는 상대를 만나야 오래 지속되는 사랑을 할 수 있는데, 그런 사랑은 찾기 힘들다는 것이 이 '로맨스 소설'의 결론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