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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
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6월
평점 :

최근에 호러, 미스터리, 오컬트 장르 소설을 많이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무서웠던 책은 이 책이다. 이 책은 2016년 3월 이세돌 9단이 바둑 AI 프로그램 알파고에게 패배한 사건 이후 바둑계의 변화를 르포 형식으로 보여준다. 솔직히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패배한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고, 최근 들어 AI,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잠식하기 시작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약간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정도였는데, 이 책을 읽고 위기감을 넘어 공포, 절망감, 무기력감을 느꼈다. 대체 앞으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왜 살아야 하나...
이 책에 따르면 알파고 이후 바둑계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바둑인들은 프로기사가 아닌 인공지능에게 의지하기 시작했고, 프로기사들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권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스승의 문하로 들어가 하루 종일 기보를 외우고 다른 문하생들과 대국을 치르며 프로기사로 성장하는 식의 '성공 코스'도 불필요해졌다. 바둑은 이제 예술이 아니라 누가 빨리 점수를 많이 내서 승리를 거두는 지를 겨루는 스포츠가 되었다. 바둑기사 개인의 스타일이나 철학은 중요하지 않고, AI의 수를 최대한 많이 암기하는 것만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 책에는 이러한 변화로 인해 울거나 웃는 사람들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AI 이후의 세계를 먼저 경험한 바둑계의 변화를 통해 다른 분야 및 전체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문학계도 예외는 아니다. 만약 소설을 사람처럼 잘 쓰는 인공지능, 혹은 사람보다 더 잘 쓰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문학계는 어떻게 될까. 2024년 제170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도쿄도 동정탑>의 일부가 AI를 활용해 집필된 걸로 밝혀진 것처럼, 실제로 작가들이 AI를 활용해 집필하는지 또는 그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AI 활용 여부를 독자가 판별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에서 소설을 쓴다는 것과 소설을 읽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앞으로도 계속 유의미한 행위일 수 있을까.
AI, 인공지능의 도입은 이미 진행 중이고 아마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보편화될 텐데, 이것이 인간에게 이로운 일이라는 보장은 없다. 알파고 이후 바둑 기사들은 인간 스승의 기보 대신 AI의 기보를 암기하느라 전보다 더 바쁘다. 출판계의 경우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 입사한 직원들이 출판사 유튜브, 출판사 SNS를 운영, 관리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호소한다. AI가 도입되면 출판사의 업무도 달라지거나 더 늘어나지 않을까. 그것이 과연 인간에게 이로운 변화 혹은 발전일까.
저자가 최근 힘을 쏟고 있는 STS(Science Technology Society) SF 집필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내용이 현실화 되지 않은 것은 조지 오웰의 예측이 틀려서가 아니라 조지 오웰의 예측이 실현되지 않도록 후대 사람들이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저자는 예언으로서의 문학이 아니라 예방으로서의 문학을 지향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직접 창안한 장르인 STS SF를 집필하고 있다고. 저자의 STS SF 소설집 <당신이 보고 싶어하는 세상>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로서 저자의 다음 작품들이 기대된다(아내분 꼭 쾌차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