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누가 제이슨 벨을 죽였나 -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3 ㅣ 여고생 핍 시리즈
홀리 잭슨 지음, 장여정 옮김 / 북레시피 / 2024년 8월
평점 :

지난주부터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에 푹 빠져서 세 권을 내리읽고, (<백조의 박쥐> 읽으려고) 밀리의 서재 가입한 김에 화제의 책 <긴키 지방의 어느 장소에 대하여>를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또 결말을 알기 전에는 멈추기 힘든 타입의 소설이었다. 그래서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시리즈에 푹 빠져 있었을 때(라고 해도 열흘 전인가) 1, 2권 읽고 바로 읽은 3권의 리뷰를 여태 못 썼다. 일단 리뷰가 미뤄진 표면적인 이유는 그건데, 솔직히 말하면 1, 2권을 열광하며 읽었던 나에게 3권의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여고생 핍의 사건 파일' 시리즈의 기본적인 얼개는 이렇다. 영국의 작은 마을 리틀 킬턴에 사는 여고생 핍은 케임브리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다. 학교 과제로 5년 전 마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조사하다 경찰을 비롯한 마을 사람 모두가 범인으로 짐작했던 인물이 아닌 다른 사람이 진범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핍은 억울하게 누명을 썼던 사람들이 구제받고, 죄를 짓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온 사람들이 처벌받는 결말을 원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핍은 1권에서 밝혀진 강간범에게 명예훼손을 이유로 고소 당하고, 스토커가 협박조의 이메일을 보내고 집까지 찾아오지만 경찰은 꿈쩍도 안 한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강간범과 스토커가 원하는 결말을 맞게 될 거라고 생각한 핍은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호기심 많고 정의감 강한 여고생이 탐정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준 1, 2권에 비해 훨씬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라는 것 정도는 알려주고 싶다. 이런 식으로 서사를 전개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작가 홀리 잭슨의 후기 중에서 "우리(영국) 형사사법 시스템과 이 시스템에 대한 아쉬움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영국의 강간 및 성폭력 건수와 신고 및 유죄판결 비율을 보면 거의 절망적인 수준입니다. 이건 분명 문제가 있습니다. 이 책이 제 목소리를 대신할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쓴 대목을 읽고 납득이 되었다.
사법 시스템에 대한 절망 때문에 사적 제재를 택한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 시리즈와 핍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고 응원한 나로서는 핍이 계속해서 선량한 정의의 수호자로 남아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래서 3권을 읽고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리뷰도 못 쓰고.) 그래도 3권까지 읽고 좋았던 점은, 이 시리즈를 읽게 된 계기이기도 한 넷플릭스 드라마 <핍의 살인 사건 안내서>를 다시 보는데 3권의 내용과 이어지는 점이 꽤 많았던 것이다. 3권 결말이 애매하기도 해서(그래서 핍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여기서 끝이 아니라 4권, 5권이 더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