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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들
정해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5월
평점 :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요즘 푹 빠져서 읽고 있는 영국 작가 홀리 잭슨의 영어덜트 추리 소설 <핍의 살인 사건 안내서> 시리즈가 담고 있는 교훈이다. 이 교훈은 최근에 읽은 정해연의 추리 소설 <용의자들>에도 적용된다. 이 소설은 버려진 건물에서 고3 여학생 '현유정'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서 사건 현장 주변에 CCTV가 없기 때문에 경찰은 탐문 수사밖에 할 수 없는 상황. 유정의 가족과 친구들은 유정이 성적도 우수하고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었다고 입을 모아 말하지만, 그들 각자가 숨기고 있는 진실은 조금씩 다르다.
이 소설은 유정을 죽인 범인으로 의심받는 용의자들 5인의 진술을 하나씩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부터 유정과 가장 친하게 지낸 친구 '한수연', 유정의 반 담임 선생님 '민혜옥', 유정의 아빠 '현강수', 유정의 남자친구 '허승원'과 그의 엄마 '김근미'가 그들이다. 겉으로만 보면 유정은 성적도 전교권이고, 친구 관계도 원만하고, 선생님들에게 사랑 받고, 부모님과의 관계도 좋고, 다정한 남자친구까지 있는, 무엇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완벽한 여고생으로 보인다. 하지만 용의자들의 진술을 차례차례 읽다 보면 유정의 실제 생활은 남들이 상상하는 완벽한 삶과 거리가 멀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하면 남들의 눈에는 완벽하게 보였던 유정의 삶을 이루고 있던 관계들이 전부 거짓이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유정에게만 주어진 것처럼 보였던 완벽한 부모, 완벽한 교사, 완벽한 애인, 완벽한 친구 같은 건 허상이고, 정작 유정 자신은 그들 때문에 엄청난 부담과 고통을 겪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에서 최종적으로 지목되는 진범은 한 사람이지만, 독자인 내 눈에는 용의자들 모두가 유정을 죽인 범인을 보였다. 소설에서만 그럴까.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말 한마디로, 행동 하나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여 왔고, 죽이고 있고, 죽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 소설이 더없이 무섭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