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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망한 사랑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평점 :

일본의 아이돌 그룹 SMAP의 노래 중에 '10달러'라는 곡이 있다. 이 노래는 "어째서 사랑에 돈이 드는 거야. 사귀는 것만으로는 안 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어디 사랑뿐일까. 친구를 만나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하다못해 돈을 벌기 위해 취직을 하려고 해도 필요한 스펙을 갖추려면 적지 않은 돈이 든다. 그러니까 돈만 있으면 되고, 돈이 많기까지 하면 행복할 것 같은데, 돈 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들을 보면 뭐 또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도 않는 이유는 뭘까. 반대로 돈이 없어도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비결은...?
김지연의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의 주제는 거칠게 말해서 '돈과 사랑'이다. 이 소설집에는 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을 겪는 인물들이 여럿 나온다. <포기>의 '나'는 전 남자친구가 '나'에게 친형제나 마찬가지인 사촌이 그동안 힘들게 모은 돈을 들고 잠적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려빚>의 정현은 헤어진 애인이 억대의 빚을 남긴 바람에 고생하는 중이다. <긴 끝>의 문애는 동거 중인 애인이 팬데믹 기간 동안 직장을 잃으면서 관계에 위기를 겪는다. <먼바다 쪽으로>의 '나'는 불안 장애가 발병하는 바람에 직장에 다닐 수 없게 된 남편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해변에 있는 펜션에서 일하기 시작한다.
관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돈이 없거나 부족해서 갈등이 생기는 상황이 있는가 하면, 그만한 돈이 있는데도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좋아하는 마음 없이>는 이혼 후 아들의 양육권을 남편에게 넘긴 안지가 남편 사망 후 남편의 아내로부터 양육비를 요구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안지에게는 현재 직업도 있고 집도 있고, 안지의 아들을 함께 키울 마음이 있다고 말하는 남편도 있지만, 정작 안지 자신에게 아들을 키울 마음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유자차를 마시고 나는 쓰네>의 삼촌과 카페 사장 역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아도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랑에 돈 말고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경기 지역 밖에서 사망>은 지방에 살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상욱이 도시에 살면서 예술가로 일하는 미주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상욱과 미주는 단 하루 동안 인터뷰 때문에 만났을 뿐이고 둘 사이에 연애 감정이 오간 것은 아니지만, 성인인 남성과 여성이 한자리에 있기만 해도 연애와 연상시키는 주변의 시선이나 '정상적인 남자'라면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 때문에 두 사람의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하다가도 종종 삐걱거린다. 차라리 그런 시선이나 고정관념이 없었다면 두 사람이 더 편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둘의 관계도 다른 전개를 보이지 않았을까.
<정확한 비밀>은 운전학원에서 만난 혜미가 유부남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이야기를 통해 연인이나 부부처럼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서로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능한 밖은 어둠>은 쇠락해 가는 어촌 마을에 사는 어린아이 지수와 종우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관심이나 애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외부 또는 환경의 작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