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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7
이디스 워튼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착하다는 건 뭘까. 이디스 워튼의 소설 <이선 프롬>을 읽으며 떠올린 질문이다. 주인공 이선 프롬은 누구라도 착하다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 미국 뉴잉글랜드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일 년 남짓 큰 도시에 있는 대학에 다니며 엔지니어의 꿈을 품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간병과 장례로 젊은 시절을 보낸 그는 자신을 도우러 와준 사촌 누나 지나와 결혼했는데, 지나마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서 또 다시 가족의 병수발을 드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아내 쪽 친척 조카인 매티가 이선을 도우러 오는데, 이 매티라는 아가씨는 살림 솜씨는 엉망이지만 성격이 밝고 감수성이 풍부해 이선과 말이 잘 통한다. 젊은 시절 내내 가족들의 간병을 하느라 연애다운 연애를 해본 적이 없고, 아내 지나와는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던 이선은 순식간에 매티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비록 아프기는 해도 아내 지나가 엄연히 살아 있고 이선과 매티의 관계는 친척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두 사람이 맺어진다면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혼이라도 한다면 법적, 경제적 곤궁에 처할 수도 있다.
<이선 프롬>은 착하게만 살아온 남자 이선 프롬이 '의무' 또는 '안정'을 상징하는 아내 지나와 '자유' 또는 '변화'를 상징하는 매티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의무를 중시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온 이선은 매티와의 만남을 통해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자기 뜻대로 해본 일은 아무것도 없고, 이대로 산다면 더 이상 자기 삶에 아무런 변화나 자극이 없을 거라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매티를 택한다면 그동안 자기 자신의 욕망보다 남들의 시선이나 요구를 중시하는 삶을 살면서 쌓은 (한 줌도 안 되는) 명예와 돈을 포기해야 할 것이고, 그 또한 큰 손해라고 느낀다.
이선이 지나를 선택하는 게 옳은지, 매티를 선택하는 게 옳은지에 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것 같은데, 이 소설의 결말이 이선과 지나, 매티 모두에게 최악이라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할 것 같다. 아내에게는 착한 남편이고 싶고 내연녀에게는 착한 애인이고 싶었던 이선의 욕심이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차라리 누구 한 사람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남을 용기를 냈더라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결말로 치닫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그러고도 여전히 불쌍한 사람, 근본은 착한 사람인 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이선의 '착함'은 자기 자신을 위한 착함이 아니었을까.
이선과 매티 사이에 오가는 감정이 과연 사랑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 이선이 일방적으로 매티를 사랑한 게 아니고 매티도 이선을 사랑했다고 판단할 만한 근거가 되는 장면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선의 입장에서 쓰인 이선의 진술(회고) 아닌가. 더군다나 매티가 의지할 데 없는 고아이고 지나에게 미움을 받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매티가 이선에게 보인 호의적인 태도는 연인 간의 애정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연기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도 모르는 어리석고 우유부단한 남자의 태도를 비꼬듯 보여준다는 점에서 과연 이디스 워튼의 작품답고 오랫동안 사랑받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