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고다 아야 지음, 차주연 옮김 / 책사람집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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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계절이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일상의 많은 부분이 변화했는데 그중 하나가 운동 시간이다. 평소에는 주로 퇴근 시간에 운동을 했는데, 요즘은 퇴근 시간에도 해가 떠 있거나 더위가 남아 있어 한밤중 또는 새벽에 운동을 한다. 운동은 주로 집 근처 공원 산책로에서 가벼운 러닝을 하는데, 나무 그늘이 없는 곳에 있다가 나무 그늘이 있는 곳에 접어들 때마다 온도차에 깜짝 놀란다.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인간에게 시원함이라는 기쁨을 주는 나무와 이런 나무를 수시로 베고 뽑는 인간. 어느 쪽이 더 사랑스러운가.


기실 나무는 사랑스럽기보다 경이롭고 위대한 존재다. 이를 알게 해준 책이 고다 아야의 <나무>다. 고다 아야는 일본의 근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고다 로한의 딸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문필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요미우리 문학상, 신초샤 문학상, 일본예술원상, 여류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나무>는 1904년생인 고다 아야가 1990년 타계한 후 출간된 유작으로, 한국에서 2017년 번역 출간된 후 절판되었다가 2024년 빔 벤더스 감독, 야쿠쇼 코지 주연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 등장한 것을 계기로 재출간되었다. 


<나무>는 저자가 13년 6개월에 걸쳐 쓴 나무에 관한 수필들을 모은 책이다. 저자의 나무 사랑은 아버지 고다 로한의 영향이 크다. 고다 로한에게는 자식이 셋 있었는데 각각 나무 한 그루씩을 줘서 도맡아 기르게 했다. 자기 나무가 있으면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볼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나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길 것이라는 뜻에서였다. 고다 로한이 식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또 있다. 이혼 후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돌아온 고다 아야에게 어느 날 고다 로한이 지갑을 주면서 손녀가 가지고 싶어하는 식물을 사주라고 했다. 딸이 어떤 식물을 골랐는데 고다 아야는 비싸니까 다른 걸 고르라고 했고, 그 사연을 들은 고다 로한은 크게 화를 냈다. 엄마가 되어서 아이의 삶에 생길 뻔한 기쁨 하나를 스스로 없앴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나무에 얽힌 사연과 어떤 나무를 보기 위해 일본 전국을 누빈 이야기 등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이 책에 실린 글을 쓸 때 이미 고령이었던 저자가 남에게 업히는 신세에 처해 가면서까지 나무를 보러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좋아하면서 보러 다닌 것이 이제까지 있었나. 앞으로도 있을까. 아름답기로 유명한 등꽃 나무와 오래된 만큼 거대한 야쿠 삼나무처럼 누구나 좋아할 만한 나무들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무들도 좋아하는 점도 감동적이다쓰러져 죽은 나무 위로 새 나무가 자라는 가문비나무처럼, 내가 그동안 몰랐던 나무의 세계를 알려주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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