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겠습니다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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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 기자 출신의 프리랜서 작가 이나가키 에미코. 트레이드 마크인 강렬한 아프로 헤어 때문에 이 분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이 분의 책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읽어보니 문장이 술술 잘 읽히고 문제 의식과 접근 방법에도 공감이 간다. 저자의 첫 책인 이 책은 1965년생인 저자가 아사히신문이라는 좋은 직장을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오십 살에 퇴사를 감행한 과정을 담고 있다. '퇴사'를 주제로 한 책이지만 퇴사를 계획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계속 회사에 다닐 예정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다. 


저자가 퇴사를 결심한 건 마흔 살의 일이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아사히신문에 입사해 신문 기자로 정신없이 일했던 저자는 선배들이 마흔 살이 될 때마다 "인생의 반환점에 다다르셨네요."라고 가볍게 말했다. 막상 자신이 마흔 살이 되자 '인생의 반환점'이라는 말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이대로 '회사 인간'으로서 일만 하면서 남은 생을 보낸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고 막막했다. 그렇다고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일 안하고 놀고 먹을 정도로 모아둔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비혼 비출산으로 의지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와중에 승진에서 누락되었다. 후배에게 업무 명령을 받는 상황이 되었다.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오보 사건이 두 번이나 일어나며 이 회사에서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지 회의감이 커졌다. 그래서 조금씩 퇴사를 준비했다. 회사에서는 어차피 퇴사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남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회사 다니는 게 즐거워져서 퇴사 계획이 미뤄지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회사 밖에서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대비해 씀씀이를 줄이는 노력을 했다. 근데 이게 의외로 즐거웠다. 저렴한 식재료를 사려고 대형 마트 대신 전통 시장에서 장을 보고, 비싼 여가 생활을 즐기는 대신 집 근처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자발적 탈원전을 실천하면서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같은 전기 제품을 처분했다. 그랬더니 구입하는 식재료의 양도 줄고, 옷도 줄고, 물건도 줄었다. (자발적 탈원전 생활에 대해서는 저자의 다른 책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에 자세히 나온다.) 예전엔 돈을 많이 벌어도 쓸 돈이 늘 부족했는데 이제는 돈이 남아돌아 걱정(?)이다.


이 책은 일이나 회사를 부정하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일은 계속 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일을 좋아한다. 퇴사를 결심한 후에도 십 년이나 더 다녔을 만큼 회사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 겪은 어려움(주택 계약, 세금 납부, 실업 급여, 건강검진 등)도 분명 있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일만 하면서 사는 건 너무 아깝다. 회사에만 의존하면 자신의 진짜 능력이나 가치를 알기 어렵다. "매달 월급이 입금되는 데에 익숙해지다보면 어느덧, 저도 모르게, 일단 돈을 벌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믿어버리게 됩니다." (18쪽) 요즘 내 무기력, 우울의 원인은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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