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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잠수 - 힘을 줘서 움켜잡을 수 없는 게 바다였다 ㅣ 아무튼 시리즈 58
하미나 지음 / 위고 / 2023년 8월
평점 :

요즘 나는 점심 먹고 나서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도는 습관이 생겼다. 공원을 돌면서 예전에는 팟캐스트를 주로 들었지만 요즘은 TTS 기능을 이용해 전자책을 '듣는다'. 분야나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듣지만 가장 즐겨 듣는 것은 아무튼 시리즈다. 처음에는 관심 가는 주제를 찾아 듣다가 이제는 관심 없는 주제도 듣는다. 계속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관심이 생기는 매직...!
어제 완독(완청?)한 책은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줄여서 '미괴오똑')을 쓴 하미나 작가의 <아무튼, 잠수>다. 저자는 <미괴오똑>을 쓰는 동안 프리다이빙이라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친구들과 놀러간 바다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해보고 다이빙의 매력을 알게 되었는데, 스쿠버다이빙은 장비를 장만하는 비용도 많이 들고 이동할 때 차량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프리다이빙은 장비의 도움 없이 자신의 폐에 있는 공기만으로 잠수하기 때문에 비용도 덜 들고 차량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프리다이빙을 시작한 저자는 점점 그 매력에 푹 빠져서 나중에는 필리핀 보홀, 하와이, 호주 등에서도 훈련하기에 이른다.
책에는 저자가 프리다이빙을 훈련하는 과정과 함께 당시 저자가 겪고 있던 심리적 문제들도 나온다. 당시 저자는 우울증에 관한 책을 쓰면서 자신처럼 우울증을 앓는 젊은 여성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중 한 분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는 일이 있었다. 국내 최고의 대학을 나왔지만 자신과 달리 경제적으로 풍족한 동기들에게 열등감을 느낀 적도 많았고, 졸업 후 취업하지 않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집안에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대학원을 나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퇴사하면서 또 다시 깊은 우울과 불안에 빠지기도 했다.
프리다이빙은 이런 문제들을 거의 말끔히 해결해 주었다. 프리다이빙을 할 때는 모든 걸 잊고 오직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된다. 생각 하나, 판단 하나가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그만큼 신중하게 되고 몰입하게 된다. 물 위에 있을 때 나를 괴롭히던 '먹고사니즘' 따위는 떠올릴 새가 없다. 기록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모범생, 우등생 기질을 내려놓을 수도 있게 되었다.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교류도 큰 즐거움이다. 자기처럼 프리다이빙이 좋아서 몇 달, 몇 년을 미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간다. 나에게도 이런 취미가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