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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카엘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5
아모스 오즈 지음, 최창모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평점 :

1950년대 이스라엘. 이십 대 초반 여성 한나는 오전에는 유치원에서 일하고 오후에는 히브리 대학교에서 문학을 공부한다. 어느 날 계단에서 미끄러질 뻔한 한나를 미카엘이 붙들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연인이 되고 결혼을 약속한다. 문제는 이때쯤부터 한나가 자신의 선택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는데, 그렇다고 미카엘과 헤어질 명분도 없어서 얼마 안 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아버린 것이다. 한나는 결혼, 임신, 출산으로 인해 유치원 교사 일도, 문학 공부도 포기한 데다 산후 우울증까지 겹쳐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다. 미카엘은 한나를 헌신적으로 돌보지만, 때로는 그 자신도 지치고 힘이 든다.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가 1968년에 발표한 소설 <나의 미카엘>은 한나와 미카엘 부부의 결혼 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부부는 남들이 보기에는 둘 다 선남선녀에 일찍 결혼해서 순조롭게 아이를 얻고 행복하게 잘 사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문제가 많다. 일단 둘 다 서로를 만나기 전에 이성 교제 경험이 없었고, 취직도 안 했고 집안이 부자도 아닌데 한 명은 공부를 계속하고 한 명은 임신, 출산, 육아로 여력이 없다. 이들의 결혼을 반대했던 집안 어른들은, 막상 이들이 결혼하자 언제 더 큰 집으로 이사 가니? 둘째 소식은 없니? 등등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은 두 사람의 성격 차이, 가치관 차이에 비하면 부차적이다. 일단 두 사람은 부부 간의 성 생활에 대한 견해 차이가 크다. 한나는 어릴 때 '여자는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성(性)적으로 너무 밝히면 안 된다'는 식의 교육을 받은 것의 역작용으로 인해, 미카엘과 정반대로 성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남성과 왕성한 성 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은밀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 반면 미카엘은 하루 종일 학교에서 일하면서 학위 준비하고 한나 대신 집안 살림과 아이까지 챙기느라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상태다. 한나는 종종 미카엘의 외도를 의심하지만 미카엘로서는 어림도 없는 소리다.
예술을 찬양하고 감성이 발달한 문학 전공자 한나와 매사에 과학 원리를 적용하고 이성을 중시하는 지질학 전공자 미카엘의 성향 차이 또한 날이 갈수록 두드러진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로망이 많은 한나는 점점 미카엘을 따분하고 지루한 남자로 여긴다. 근면 성실하고 목표 지향적인 미카엘은 점점 한나를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르는 여자로 느낀다. 이런 두 사람의 관계에 변곡점이 되는 사건이 바로 전쟁이다. 1956년 수에즈 전쟁에 징집되어 한동안 집을 떠났던 미카엘은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이 흠모한 과학 기술의 발전과 이성적 사고의 결과가 전쟁과 그로 인한 수많은 이들의 죽음임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제야 미카엘은 한나가 결혼 생활 초반부터 이야기했던 삶의 무의미함, 인간의 어리석음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랑이 뭔지, 결혼이 뭔지, 산다는 게 뭔지, 인간이라는 게 뭔지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일찍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인간 행세를 해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고, 아이는 이미 낳아버렸고, 삶은 벌써 중반부(어쩌면 후반부)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남은 생은 어떻게 살 것인가. 아 막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