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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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의 <쓰게 될 것>을 읽다가 앞으로는 스마트폰 들여다 보는 시간을 줄이고 소설을 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SNS 앱을 지웠다. 이렇게 좋은 소설이 있는데 나는 왜 별로 좋지도 않고 도움도 안 되는 SNS 상의 글을 읽으며 그동안 그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까. 누가 왜 썼는지도 모르고, 읽고 나면 괜히 기분만 상하는 글을 읽느라 시간을 날려 보내지 말고, 이제부터는 작가가 한 줄 한 줄 집중해서 정성을 다해 쓴 글만 읽어야지. 그래야 나도 내 글을 읽은 사람이 시간을 낭비했다고 느끼지 않는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쓰게 될 것>은 나로 하여금 그런 생각과 다짐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에는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표제작 <쓰게 될 것>은 똑같이 전쟁을 겪었지만 삶에 대해 전혀 다른 가치관을 지닌 모녀 삼 대의 이야기를 그린다. 전쟁을 한 번 겪은 '나'는 전쟁을 두 번 겪은 어머니가 인류에게 희망은 없다고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전쟁을 세 번 겪은 할머니가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하고 그러므로 인류에게 희망은 있다고 말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그러나 전쟁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언젠가 죽고, 대부분은 예고 없이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걸 알면서도 (언젠가 죽을) 타인을 사랑하고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미래를 계획하며 살아가는 원동력은 뭘까.


<유진>은 삼십 대 여성 유진이 이십 대 시절 아르바이트를 했던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했던 동명이인 유진 언니의 부고를 들으면서 시작된다. 가난하고 외로운 대학생 시절을 보낸 유진은 남들과 달리 자신의 입장을 배려해주고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관심사나 장래 희망을 알아봐 준 유진 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유진처럼 나도 어릴 때는 주변 어른들이나 손윗사람들이 나에게 해준 것에 대해 고마운 줄 몰랐다가 그 분들 나이가 되고 나서야 뒤늦게 고마움을 깨닫는 일이 종종 있다. 더 늦기 전에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겠다.


유진은 유진 언니를 보면서 "어른스럽다는 건 아이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장에 근거해 이 책에 나오는 어른들을 분류하면 크게 어른스러운 어른과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으로 나눌 수 있다. <유진>의 유진 언니나 <ㅊㅅㄹ>의 서진이 아이 입장을 배려하는 어른스러운 어른이라면, <인간의 쓸모>에서 자식의 동의 없이 자식의 동영상을 촬영해 돈을 버는 부모나 <썸머의 마술과학>에서 거액의 빚을 지고도 가족 앞에서 뻔뻔하게 행동하는 아버지, <차고 뜨거운>에서 딸에게 가스라이팅을 일삼는 어머니 등은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에 속한다. 

 

<디너코스>의 아버지 오석진은 환갑이 되어서도 철없는 행동을 일삼아 가족들을 걱정시킨다는 점에서는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에 속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소설 후반에 이르러 드러나는 그의 본심을 알고 나서는 그가 정말 어른스럽지 않은 어른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무계획적이고 무책임한 면이 있을지는 몰라도 인간으로서 하면 안 되는 짓을 한 적은 없고, 어떻게 보면 자신과 가치관이나 취향, 습성 등이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 또한 미성숙한 게 아닐까. 내가 나영(석진의 큰딸이자 화자) 같은 유형의 인간이라서 석진이 많이 밉기도 했고 그에게 많이 미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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