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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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우다영 작가의 세 번째 소설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를 읽고 이 작가의 작품을 좀 더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읽은 책이 우다영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이다. 두 책을 읽어보니 <그러나 누군가는>이 SF와 판타지 소설의 사이에 있다면 <앨리스 앨리스>는 이른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앨리스 앨리스>의 경우, 책에 수록된 작품들이 독자들이 살고 있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공간에서 진행된다는 점, 인물들이 살고 있는 시공간에서 작용하는 법칙이나 원리가 현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은 순문학답다. 하지만 작품 속 인물들이 어떤 사건이나 인식을 계기로 무의식이나 평행 우주, 사후 세계 등 현실과 다른 시공간을 생각하게 된다는 점, 현실과 다른 시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이 현실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는 점은 순문학이라기보다 장르문학 같다. 나는 어쩌다 보니 우다영 작가의 작품을 역순으로 읽고 있어서 괜찮았지만(?), 초기작부터 순서대로 읽어온 독자들은 <그러나 누군가는>을 읽고 다소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책에는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2020년 현대문학상 후보작이었던 <창모>다. 화자인 '나'는 폭력적인 성향을 지닌 창모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다. 창모를 아는 사람들은 '나'와 창모가 친한 사이라고 밝히면 의외라며 놀라기도 하고 어떻게 그런 사람과 친하게 지내느냐며 두려워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창모가 그동안 벌인 악행들을 알고 있고 사람들이 왜 그를 멀리 하는지 이해하지만, '나'는 이른바 악인으로 불리는 사람을 악하게 대하는 것 역시 악행이다, 상대가 악인일수록 선하게 대해야 한다고 믿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믿음을 흔드는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는데...


맨처음에 실린 <당신이 있던 풍경의 신과 잠들지 않는 거인>도 좋았다. 화자인 '나'는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서 다닌 종교 단체에서 자주 봤던 은령과 고등학교에서 재회한다. '나'는 성적도 우수하고 친구도 많은 은령이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해도 모르는 체 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후 두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임을 확인하고 방과 후 단둘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사람이 처음 만난 종교 단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인간의 마음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 날 이후 사이가 급격히 멀어진다. 


문제의 대화에서 은령은 '나'에게 "우리가 오랫동안 마음이라고 믿어왔던 부분이 실은 그저 뇌의 연산 작용 끝에 마련된 텅 빈 공간"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은령의 말을 '마음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끝내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은령이 실제로 의미한 바는 '우리가 마음의 작용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은 이성의 작용'이라는 것이었고, 은령이 자신의 믿음을 삶으로서 증명한 사실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된다. 만약 '나'가 은령을 오해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어떤 삶이 펼쳐졌을까. 미래가 과거로 틈입해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이런 이야기도 SF 같고 판타지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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