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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전성진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10월
평점 :
팟캐스트를 즐겨 듣는다. 고정적으로 듣는 프로그램이 몇 가지 있는데 가장 오랫동안 애정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셀럽 맷 님이 진행하는 <영혼의 노숙자>이다. <영혼의 노숙자>에 자주 출연하는 맷 님의 지인이 몇 명 있는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스트는 굉여 님이다. 굉여 님 특유의 솔직하고 구수한 입담은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런 굉여 님의 첫 산문집이 나왔다. 제목은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굉여 님이 본명인 전성진으로 출간한 이 책에는 8년 전 그가 처음 독일 생활을 시작하던 때의 일들이 담겨 있다.
글과 음식을 전공한 저자는 대학 졸업 후 음식 잡지 에디터로 활동하다 애인을 따라 독일로 갔다. 그 때까지 독일에 대해 아는 정보라고는 두 달 정도 인터넷에서 검색해 알게 된 것이 전부였다. 어학원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지내며 천천히 독일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계약을 종료하게 되는 바람에 서둘러 살 집을 구해야 했다. 비용 문제로 원룸은 사치라고 느껴져 다른 사람과 집을 나눠 쓰는 WG, 셰어하우스를 계약하게 되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이 책의 진짜 주인공, 저자의 독일 생활 첫 플랫메이트인 요나스다.
처음에 저자의 가족과 친구들은 젊은 여성인 저자가 낯선 독일인 아저씨와 한 집에 산다는 것에 걱정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요나스와 함께 사는 저자의 고민은 그게 아니었다. 집에서 팬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요나스, 위생 관념이 없어도 너무 없는 요나스, 자꾸 말을 걸고 방 문을 노크하는 요나스... 요나스의 모든 것이 불편했고 불평 거리였지만, 요나스와 대화를 나누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자꾸만 '요며드는' 저자를 보면서 나도 같이 '요며들었다'. 어쩌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하기 힘든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더 큰 사랑 아닐까.
책에는 요나스 아저씨 이야기 외에도 독일 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저자가 경험한 일들이 다양하게 담겨 있다.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지만 물가가 높은 독일, 한국에 비해 성소수자 차별은 적지만 인종차별은 만연한 독일 등 독일의 다채로운 면을 알 수 있다. 독일 음식 하면 맛없기로 유명한데 생각보다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것도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책에 소개된 음식들이 하나 하나 궁금한데 작가님 유튜브에서 만드는 법을 보여주시면 궁금증도 해소되고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