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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미드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2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기원전 26세기 경. 이집트의 왕 쿠푸가 새로운 파라오로 등극한다. 등극하자마자 그는 신하들에게 "어쩌면 자신은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라는 말을 흘린다. 그 말을 들은 신하들은 기뻐하기는커녕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그들에게 피라미드 건설은 여러모로 유리한, 아니 꼭 필요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갖은 수를 사용해 쿠푸 왕을 설득하는 데 성공, 마침내 새로운 피라미드 건설에 착공한다. 공사 시작에 앞서 이들은 대량의 채찍부터 만든다. 백성들은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 거대한 돌과 무자비한 채찍질임을 알면서도 채석장으로 향한다. 명령에 따라도 죽고 따르지 않아도 죽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지만, 저자의 조국 알바니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한다. 알바니아는 1941년부터 1985년까지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독재자로 불리는 엔베르 호자가 통치했다. 호자는 냉전 시대에 핵전쟁이 일어날 것을 대비해 전국에 70만 개가 넘는 벙커를 설치했고, 그의 사후 딸과 사위가 그의 기념관을 지었는데 그 기념관이 바로 피라미드 형태다. 작가는 자국에서 실제로 자행된 독재와 억압, 착취와 폭력의 역사를 고대 이집트를 상징하는 건축물인 피라미드 이야기에 빗대어 전달한 것이다.
알바니아와 마찬가지로 오랜 독재의 역사를 가진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 참 많았다. 특히 정부가 대규모 토목 및 건축 공사에 국민들을 동원하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고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사 주체인 독재자를 칭송하는 대목에서 엄청난 기시감을 느꼈다. 착취에 가까운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기는커녕 폭행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는데도 '그 때가 좋았다'라고 회상하는 사람들, "불안한 감정만 사라진다면 나머지는 뭐든 견딜 만하다"라며 권위에 '감사'하고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들의 트라우마야 말로 독재의 가장 큰 폐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