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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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대만 작가 천쓰홍의 장편 소설 <귀신들의 땅>을 읽었다. 처음 들어 보는 작가였고 분량이 상당한 책이었지만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했던 1980년대 대만. 주인공 남성은 게이라는 이유로 부모에게 아들 대접을 못 받고 외국을 떠도는 신세다. 현재 그에게는 누나만 다섯이 있는데, 누나들은 딸이라는 이유로 태어났을 때부터 부모에게 자식 취급도 못 받고, 결혼 후에는 남편과 자식에게 발이 묶여 외국에도 못 나간다. 여성으로서, 남성인데 남성 대접 못 받는 게이 남성도 불쌍하지만 자신이 게이인지 헤테로인지 알 기회도 없이 살았던 누나들이 더 불쌍하게 느껴졌다. 이런 여성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알아보는 건 헤테로 남성이 아니라 게이 남성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천쓰홍의 최신작 <67번째 천산갑>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 소설은 어린 시절 아역 배우로서 한 광고 촬영에서 만나 평생의 친구가 된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프랑스 파리 시내의 한 비좁은 아파트에서 지내는 '그'는 모르는 사람 눈에는 별 볼 일 없는 중년의 아시아 남성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한 적도 있는 배우다. 그런 '그'가 외국에서 홀로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는 건 '그'가 게이이기 때문이다. '그'가 동성의 애인들과 자유롭고 편안하게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건 동성혼 합법화 이전의 대만에선 불가능하고 외국에서만 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자신이 태어난 땅에서 애인을 찾고 사랑을 일구어 나갈 만한 환경을 주변 사람들이 제공해 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함이 나중에 밝혀진다.


이런 상황을 모르는 듯 보이는 '그녀'는 전화로 두 사람이 오래 전에 찍은 영화가 신기술로 복원되어 낭트 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얼마 후 파리에 도착한 '그녀'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상태다. 유명 배우이고 유력 정치인의 아내이기도 한 '그녀'는 '그'의 아파트가 좁다고 타박하면서도 '그'와 한 침대에서 함께 자기를 간청한다. 오래 전 두 사람을 스타로 만든 광고에서처럼 같은 침대 위에 누워 편안히 잠을 자고 싶다고, 오랫동안 오직 그것만이 소원이었다고 애원한다. 그렇게 함께 잠을 자고 일어난 두 사람은 이튿날 아침부터 파리 시내 이곳저곳을 걷는다. 집으로 돌아 오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잠을 청한다. 숙면과 함께 봉인된 기억들이 깨어난다.


'그'는 자신의 곁을 스쳐간 남자들과 이제는 영영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평생의 사랑 J를 그리워 한다. '그'와 J는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서로를 잘 이해했다. '그'는 J의 육신이 사라진 후에도 J가 자신에게 가르쳐준 단어들을 떠올리며 J와의 추억으로 자신의 일상을 채운다. 반면 '그녀'에게는 다시 보고 싶은 대상조차 없다. '그녀'의 학창 시절은 그저 광고일 뿐인데 어린 여자애가 벌써부터 남자 경험을 했다며 놀렸던 어른들과 아이들로 얼룩졌고, 젊은 시절은 헛된 약속으로 '그녀'를 희롱했던 전 애인들과 연예인 관계자들로 더럽혀졌다. '그녀'는 그런 상황을 알면서도 '그녀'를 보호해 주기는커녕 방조하고 조장했던 엄마를 저주한다. '그'에게 엄마는 그리움과 애정의 원천이지만 '그녀'에게는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평생 짜릿할 기회가 없었거든. 나는 한 번도 짜릿했던 적이 없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러니까, 지금 나의 가장 큰 바람은, 내 아이가 짜릿해지는 거야." (469쪽)


동성애를 반대하는, 그러니까 동성 간의 '사랑'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들이 제대로 사랑을 해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간에 사랑은 타인이 강요한다고 해서 시작될 수 없고 반대한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타인에게 사랑을 강요하거나 타인의 사랑을 반대할 능력이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애초에 남의 사랑에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는데도 말을 얹는 사람들에게 굴하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고 노력한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한 동시에, 자신이 어떤 사랑을 하고 싶은지 알 기회도 없이 헤테로 정상성에 갇혀 평생을 허비한 '그녀'가 불쌍하다고 느꼈다. 


테로 정상성에서 배제된 남자도 괴롭지만 헤테로 정상성에 속해 있는 여자도 괴롭다면, 헤테로 정상성은 결국 헤테로 남성만을 위한 것인가. 문제는 헤테로 남성도 헤테로 남성대로 괴롭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런 세상에서 행복한 건 누구인지,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세상이 얼마나 더 존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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