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일랜드계 백인인 브래드는 한국계 미국인인 아내의 아버지 호철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미국 뉴욕의 JFK 공항으로 향한다. 문제는 팬데믹으로 인한 격리 의무 때문에 한국에 도착해도 곧바로 장인을 만나러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아내와도 떨어져 호텔에서 격리 생활을 하게 된 그는 기내에서 썼던 미국 이민 1세대인 장인 이호철의 일대기를 이어서 써보기로 한다. 1942년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 신세가 되어 결국 미국 이민을 택했고,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시작해 종국에는 사업체를 여러 개 거느릴 정도로 큰 성공을 한 그가 한국에서 말년을 보내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를 쓴 문지혁 작가의 소설집 <고잉 홈>은 미국으로 이민 또는 유학을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다. 문지혁 작가는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해 뉴욕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한국어 강사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외부인이 되어보고, 외부인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았던 경험을 반영한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대표작 <초급 한국어>, <중급 한국어>가 작가 자신의 경험을 거의 그대로 반영한 느낌이라면, <고잉 홈>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초월해 미국 이민자, 유학생 전반의 이야기를 폭넓게 다룬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책에는 총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미국 이민 1세대인 장인의 생애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백인 사위의 분투를 그린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를 시작으로 시카고에서 뉴욕 집까지 이동하는 차에서 진행되는 실험에 참가한 현의 이야기를 담은 <고잉 홈>, 결혼 1주년 기념일을 맞아 플로리다의 한 호텔로 여행을 떠난 부부의 이야기인 <핑크 팰리스 러브>, 고모 가족과 함께 디즈니 월드에 갔다가 생긴 일을 그린 <크리스마스 캐러셀>, 저널리즘 수업 과제를 위해 단골 세탁소 주인을 인터뷰하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골드 브라스 세탁소> 등 한 편 한 편의 설정이 다채롭고 내용도 재미있다.


가장 좋았던 작품은 한인 교회에서 운영하는 한글 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게 된 남성과 '맹 선생님'으로 불리는 여성 사이의 짧지만 깊은 우정을 그린 단편 <뷰잉>이다. 속상한 일이 있을 때에는 매운 음식을 먹어야만 풀리는 감정이 있고, 아메리카노가 아닌 믹스 커피를 마셔야만 달래지는 허기가 있음을 아는 건 한국인들뿐이지 않을까. 한 해의 마지막 날 응급실 병원을 찾게 된 부부의 이야기를 그린 <나이트호크스>,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건물에서 벌어진 일을 그린 <뜰 안의 볕>, 아버지를 찾아 한국에 온 한국계 미국인 자매의 다큐멘터리 제작기를 담은 <우리들의 파이널 컷>도 하나 같이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