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
앨러스데어 그레이 지음, 이운경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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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맥스 맥캔들리스는 다들 괴짜라고 조롱하는 의학 교수이자 천재 외과 의사인 갓윈 백스터를 흠모한다. 어느날 갓윈의 부름을 받은 맥스는 갓윈으로부터 자신의 조수가 되어 어떤 일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일이란, 갓윈의 저택에 사는 벨라라는 여성의 발달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벨라는 아름답고 성숙한 여성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정신 연령이나 지적 수준은 신생아 레벨을 겨우 벗어난 정도다. 맥스는 벨라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고 청혼을 하기에 이른다. 벨라는 맥스의 청혼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은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며 던컨 웨더번이라는 변호사와 여행을 떠난다.


여기까지가 2023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2024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비롯한 4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 <가여운 것들>의 초반 줄거리이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원작 소설을 읽었는데, 일단 영화가 너무 좋았다.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 미술, 의상, 음악 등이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고, 무엇보다 여성의 자유와 욕망, 성장을 억압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풍자가 영화 곳곳에 녹아 있으며 여성 스스로 그러한 억압을 극복하고 파괴하는 과정을 그린 점이 너무나 감동적이고 만족스러웠다.


이러한 마음을 품은 채로 읽은 앨러스데어 그레이의 원작 소설은, 놀랍게도 영화보다 더 훌륭했다. 소설은 일견 영화와 비슷한 줄거리를 따르는 듯 보인다. 성인 여성의 몸을 가졌지만 정신 연령과 지적 수준은 한참 어린 벨라. 그런 벨라를 사랑하는 맥스와 벨라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는 변호사 던컨. 이어지는 여행과 벨라의 성장 그리고 각성... 결국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된 벨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해피 엔딩을 맞는 영화와 달리, 소설은 조금, 아니 전혀 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소설에선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지고지순하게 벨라를 사랑했고 결국 벨라의 남편이 되는 맥스의 실체가 벨라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밝혀진다. 


영화 <가여운 것들> 공개 당시 선정성 논란이 있었는데(벨라가 무수히 많은 남성들과 성관계를 가지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 비하면 소설은 선정성이 낮다. 가독성이 좋은 소설은 아니라서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소설을 읽는 편이 훨씬 이해가 잘 된다. 영화만 봤다면 소설도 꼭 읽어보시길. 아직 둘 다 안 봤다면 영화부터 보고 소설을 읽으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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