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와 영토 - 2010 공쿠르 상 수상작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1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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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드 마르탱은 일견 부유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듯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는 어릴 때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건축가인 아버지는 늘 바빠서 기숙학교에서 지내며 외로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예술대학 졸업 후 상업 사진 작가가 된 제드는 할머니의 부고를 듣고 아버지와 함께 장례를 치르러 가던 길에 우연히 미슐랭 지도를 보고 영감을 얻는다. 파리에 돌아와 작업을 시작한 그는 '지도는 영토보다 흥미롭다'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열고, 신인 사진 작가로는 드물게 빠른 속도로 스타덤에 오른다. 이른 나이에 부와 명예 그리고 아름다운 연인까지 얻은 그는 돌연 사진에서 회화로 장르를 바꾼다.


사진을 그만둔 제드는 그 후 칠 년 이상 두문불출하며 회화 작업에 몰두한다. 그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프 쿤스, 데이미언 허스트 같은 유명인들을 사실적으로 그린 초상화로 다시 한 번 큰 주목을 받는다. 그의 그림들은 고가에 팔리고, 전보다 더 큰 부와 명예를 얻은 그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한다. 그것은 영국에서 혼자 생활하며 작업 중인 소설가 미셸 우엘벡과의 협업이다. 제드는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지닌 미셸에게 이제까지 다른 누구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는 친밀감을 느낀다. 그는 미셸과의 오랜 우정을 꿈꾸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그의 희망은 사라지고 만다.


2010 공쿠르상 수상작인 미셸 우엘벡의 소설 <지도와 영토>는 일견 전통적인 예술가 소설처럼 보인다. 주인공 제드 마르탱은 일견 성공한 예술가로 보인다. 이른 나이에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부와 명예를 얻었을 뿐 아니라 사진과 회화 양쪽에서 모두 인정받고 연애까지 잘한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항상 고독하고 공허하다. 유일한 혈육인 아버지와는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고, 연인인 주느비에브와는 일적으로도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에게는 친구다운 친구도 없는데, 처음으로 영혼이 통하는 친구라고 여겼던 미셸과는 우정을 길게 이어가지 못한다.


그렇다면 모든 걸 갖춘 제드의 인생을 그토록 고독하고 공허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 그것은 현대 사회의 핵심인 자본주의와 상업주의다. 제드의 아버지는 돈을 버느라 바빠서 아들에게 소홀했다. 제드의 사진과 회화는 작품 자체의 가치보다는 유명한 제품(미슐랭 지도)과 유명한 인물을 차용한 것이 화제가 되어 유명해졌다. 그의 작품은 기획과 홍보, 판매 단계를 거치며 상품으로 전락했다. 일을 통해 만난 사람과는 일을 떠난 사이로 발전하기 어렵고, 일이 끝나면 자연히 그 관계도 소멸한다. 이런 사회에서 예술가는 예술이라는 상품을 만들어내는 생산자에 불과하며, 관계는 돈보다 높은 가치를 가지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작가 자신을 투영한 인물이 등장할 정도로) 유머와 위트가 곳곳에 번뜩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우울하고 허무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그런 나를 눈여겨 봐주는 사람은 만나기 어렵고, 그 사람과는 결국 헤어지고, 그런 것이 인생이라면 우리는 무슨 낙으로 살아야 할까. 한때는 기발하고 독창적이라고 극찬을 받았던 작품들이 금세 잊히고 사라지는 것이 예술이라면 예술가는 무엇을 위해 창작을 하는 걸까. 유명해지고 부유해진 이후의 삶은 유명함과 부유함을 견디는 것뿐이라면 삶을 지속할 이유가 있는 까. 결코 유명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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