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기담집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은희 옮김 / 부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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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교도관이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있는 사형수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편지에 따르면 이 사형수는 한 남자를 죽이고 그 사람의 금고에서 3만 엔(현재 가치로 약 1억 6,000만 원)을 훔친 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일로 사형을 선고받은 상태이므로 실은 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게 있다고 고백한다고 해서 더 이상의 극형을 받을 가능성은 없다. 그저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 마음의 가책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는 이 사형수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는 일란성 쌍둥이 형이 있고 그가 저지른 모든 범죄와 살인은 바로 이 형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한다. 대체 어떤 사연일까.


에도가와 란포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1894년생인 에도가와는 1923년 작가로 데뷔한 이래 수많은 추리소설과 탐정소설, 괴기 소설을 발표하며 엄청난 명성과 인기를 얻었다. <에도가와 란포 기담집>은 1924년에 발표된 <쌍생아>부터 1931년에 발표된 <메라 박사의 이상한 범죄>까지 총 16편의 괴기스럽고 잔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로 실린 단편 <쌍생아>는 일란성 쌍둥이 형을 죽이고 형의 행세를 하며 범죄 행각을 벌이고 다닌 사형수의 이야기를 그린다. 쌍둥이 트릭 자체가 지금은 새롭지 않지만 당시에는 기발했을 것 같고,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성장 과정에서 생긴 차이점을 지우기 위해 화자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자세하게 서술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인간의 악의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범죄로 이어지는지, 첫 번째 범죄가 두 번째 범죄로 연결되고 두 번째 범죄가 세 번째 범죄로 연결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생하게 묘사한 점도 인상적이었다.


이어지는 단편 <붉은 방> 역시 살인자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화자는 인생이 너무 시시하고 지루한 나머지 살인이라는 '유희'에 빠져들었고, 그 결과 99명의 목숨을 빼앗게 되었다고 밝힌다. 언뜻 보기에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결여된 나머지 목숨을 빼앗는 행위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 같은 인물처럼 보이지만 뒤늦게라도 죄책감을 느끼는 걸 보면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아닌 것 같고, 그보다는 누군가의 작은 악의로도 죽음에 다다를 수 있을 만큼 인간의 목숨은 언제나 위태롭고 이를 강력한 법률이나 사회 제도로 방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 책에는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 세계를 대표하는 단편 <인간 의자>도 실려 있다. 작가인 요시코는 자신의 팬이라고 밝힌 남자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가구 직공인 남자는 가구 중에서도 의자를 전문으로 만드는데, 어느 날 자신이 만든 의자가 너무나 마음에 든 나머지 기상천외한 생각을 떠올린다. 예전에 이 단편을 읽었을 때에는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라서 소설의 형식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못했는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이중, 삼중의 반전으로 독자를 놀래키는 방식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서 과연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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