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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일기
김지승 지음 / 난다 / 2022년 9월
평점 :
최근 몇 년 동안 부모님께서 연달아 수술을 받으셨다. 특히 아버지는 올해 이맘때 큰 수술을 받으시고 현재까지도 경과를 지켜보는 상황이다. 환자의 가족으로서 여러 번 병원을 오가면서 세상에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느꼈다.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새벽부터 대기하는 환자와 가족들, 수술 전후 환자를 돌보기 위해 몇 주, 몇 달에 걸쳐 근처 모텔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수술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검사를 받고 경과를 확인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보이고 들리고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짐승일기>는 암 수술 경험자인 이지승 작가가 항암 치료를 받고 있는 현재의 생활에 대해 일기 형식으로 쓴 책이다. 전에 없던 증상을 느끼고 병원을 찾아간 저자는 의사로부터 항암 후유증으로 오는 갱년기 증상일 뿐 갱년기는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산부인과를 찾아가 보았지만 답변은 비슷했다. 갱년기 증상은 갱년기와 무엇이 다른가. 원인이 무엇이든 증상이 있으면 치료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생각을 말로 하면 아픈 여자, 늙은 여자가 말도 많고 예민하게 군다고 할 것 같아 그만뒀다. 그렇게 저자에게는 치료되지 않은 증상과 언어화되지 못한 상처만이 남았다.
아픈 사람의 삶에 아픔만 있는 건 아니지만 아픔 이외의 것도 아픔으로 해석되는 경향은 있다. 친구와 함께 일본의 가부키 공연을 보던 저자는 무대 위의 어떤 존재를 보고 매혹되었다. 검은 천을 온몸에 두르고 무대 위에서 배우들의 옷을 벗기거나 입하고 소품이나 무대 장치를 이동하는 역할을 하는 그들의 정체는 가부키 용어로 '쿠로코(黑子)'라고 불리는 이들이었다. 분명히 무대 위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관객의 눈에 보이지만 '보이지 않기'로 합의된 그들을 보면서 저자는 그들이 꼭 아픈 사람, 늙은 사람, 여성인 사람 같다고 느꼈다. 보이지 않기로 합의된 것을 보는 것이 아픔이라면,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