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 캐드펠 수사 시리즈 1
엘리스 피터스 지음, 최인석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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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영국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 젊은 시절에는 배를 타고 세계를 떠돌며 십자군 전쟁에도 나갔지만 현재는 수도원의 정원에서 각종 약용 식물을 재배하며 평화롭게 살고 있는 캐드펠 수사에게 어떤 임무가 내려진다. 임무의 내용은 수도원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웨일스에 있는 귀더린이라는 시골 마을에 매장되어 있는 성녀 이니프리드의 유골을 가져오는 것. 웨일스어에 능통한 캐드펠은 통역으로서 로버트 부수도원장과 콜룸바누스 수사, 존 수사 등과 함께 귀더린으로 향하는데, 막상 귀더린에 도착하고 보니 현지 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부수도원장과 수사들은 정부와 교회가 이미 허가한 일이라고 설득해 보지만, 귀더린 주민들은 귀더린에서 태어나 귀더린에서 죽은 성녀 이니프리드의 유골을 낯선 외지인들에게 내주는 것을 탐탁히 여기지 않는다. 특히 귀더린의 명사이자 주민들로부터 존경 받는 영주인 리샤르트가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수도원 사람들의 입장이 난처해진다. 그런데 이 와중에 리샤르트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용의자로 지목된 인물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존 수사가 투옥된다. 대체 리샤르트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이며 캐드펠 수사는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을 것인가.


<유골에 대한 기이한 취향>은 영국의 추리 소설 작가 엘리스 피터스의 대표작 '캐드펠 수사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77년 영국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이후 18년 동안 총 21권이 출간되었다. 나는 이 소설을 '정세랑 작가의 인생작'으로 먼저 알았다. 정세랑 작가는 2023년 10월 자신의 첫 역사 미스터리 소설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를 발표하면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역사 미스터리 장르에 대한 오랜 애정과 깊은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정세랑 작가의 추천작 맨 윗자리에 늘 캐드펠 수사 시리즈가 있어서 어떤 작품인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전면 개정판으로 만나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사실 처음에는 중세 영국의 지명이나 인명이 낯설고, 무엇보다도 130쪽이 넘도록 사건이 등장하지 않아서 읽기가 조금 힘들었다(메모 요망). 하지만 사건이 등장하고 본격적인 추리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페이지가 쭉쭉 넘어갔다. 사건 발생 당시에는 여러 정황으로 보아 리샤르트의 가정사로 인해 발생한 사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캐드펠 수사가 일종의 탐정으로서 조사를 시작하고 리샤르트가 가진 돈과 권력, 명예를 둘러싸고 귀더린 주민들뿐 아니라 수도원 사람들까지도 탐욕을 품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용의자의 범위가 넓어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했다.


중세 영국의 사회상을 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영국인들도 스코틀랜드나 웨일스 방언을 못 알아 듣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는 한데, 이 소설에서 잉글랜드 영어를 사용하는 신부들이 웨일스 방언 통역을 필요로 하는 장면을 보면서 통역이 필요할 정도면 방언이 아니라 아예 다른 언어로 보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1977년에 발표되었지만 소설의 배경은 중세이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경찰과 사법 제도에 의해 처리했을 일을 지방의 자치 권력과 종교에 의해 처리하는 장면들도 흥미로웠다. 이런 식으로 역사 소설과 추리 소설의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점이 역사 미스터리의 매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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