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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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머릿속이 복잡하고 마음이 산란할 때마다 시집을 읽는다. 시인이 고심 끝에 고른 단어들로 빚어낸 문장들을 천천히 읽다 보면 조금씩 생각이 정리되고 기분이 나아지는 효과를 느낀다.이런 효과를 느낀 게 나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기도는 좋은 시에 가깝고, 좋은 시는 좋은 기도에 가깝다."라는 이 책의 문장을 잃고 무릎을 쳤다. 종교가 없는 나는 그동안 기도를 하는 대신 시를 읽었구나. 그렇다면 종교가 있는 사람이 기도를 하는 마음은 시를 읽는 마음과 비슷할까. 이문재 시인이 엮은 책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를 읽으며 한 생각이다.


이 책은 시집 <내 젖은 구두 벗어 해에게 보여줄 때>, <제국호텔>, <지금 여기가 맨 앞> 등을 낸 이문재 시인이 엮은 시 선집이다. 책에는 나희덕, 김현승, 안도현, 도종환, 권정생 등의 한국 시인들과 네루다, 릴케, 타고르 등 외국 시인들, 이해인 수녀, 틱낫한 등 종교인이면서 동시에 이름난 문인인 이들의 글을 담고 있다. 마더 테레사의 기도법, 전태일 열사가 쓴 두 번째 유서, 수경 스님이 쓴 '오체투지의 길을 떠나며' 등 시로서 집필된 글은 아니지만 문장이 시처럼 읽히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글도 여러 편 실려 있다.


이문재 시인은 왜 이 책의 테마로 '기도'를 택했을까. 후기에 따르면 시인은 오래 전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 두 돌, 세 돌이 지나도 아이가 일어서지 못하자 자신도 모르게 사찰을 찾고 기도를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끊임없이 조건을 달고 있었다. '이렇게 해주시면 내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왜 나만, 왜 내가 구원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솟구쳤다. (중략) 구원은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족과 이웃이, 사회가, 시대가, 인류가, 천지자연이 안녕해야 비로소 내가 안녕할 수 있었다." (160쪽) (참고로 아이는 다섯 살 때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이 때를 계기로 시인은 좋은 시와 기도는 '타인의 마음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라'라는 황금률을 공유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만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남도 안녕하기를 기원하고, 종교 간의 벽을 부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는 데 시와 기도가 일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 실린 시를 눈으로 읽는 데 그치지 말고, 시를 읽고 이어 써보는 경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좋은 시와 기도를 손으로 써보고 마음에 새기면, 의식하지 않아도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오고 머릿속에서 좋은 생각이 떠오를 것이다. 시 쓰기 연습도 되니, 시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좋은 도전 과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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