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자세 소설Q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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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는 어릴 때 엄마와 함께 공중목욕탕에서 살았다. 사연은 이렇다. 유라의 엄마 오혜자는 남편을 잃고 사기까지 당하면서 전 재산을 잃었다. 친정 부모에게 받은 돈으로 집을 구하는 대신 '24시만수불가마사우나'의 지하 1층 여탕 세신사 자리를 샀다. 매일 목욕탕에서 어린 딸과 함께 먹고 자고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빚을 갚고 집을 산 후에도 엄마는 세신사로 일했다. 먹고 살려면 계속 돈을 벌어야 하기도 했지만, 여탕에서 만난 여자들과 쌓은 우정과 의리 때문이기도 했다. 


김유담 작가가 2021년에 발표한 소설 <이완의 자세>는 목욕탕에서 세신사로 일하는 엄마의 딸로 살아온 여자의 삶을 그린다. 주인공 유라는 엄마가 세신사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한때는 거액의 빚과 어린 딸자식 밖에 가진 것이 없었던 엄마가 인생 역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나 아빠가 없는데도 돈 걱정 없이 비싼 과외를 받으며 무용을 전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엄마가 휴일도 없이 여탕에서 여자들의 때를 밀며 열심히 일한 덕분인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유라는 몸에 대한 거부감을 느낀다. 누가 자신의 몸을 보거나 만지는 것도 불쾌하고, 자신이 남의 몸을 보거나 만지는 것도 께름칙하다. 다른 전공도 아닌 무용을 전공하는 유라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무용가는 결국 몸을 보고 몸으로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성적은 점점 떨어지고 연애까지 안 풀리자 유라는 무용을 아예 그만둘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유라가 전 세계적인 무용가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엄마는 유라의 고민이 마뜩잖다.


이 소설은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여탕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자들은 목욕탕에서 몸만 씻는 것이 아니라 수다도 떨고 남몰래 울기도 하면서 기분 전환을 하고 간다. 밖에서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간에 목욕탕 안에선 잘 씻고 잘 쉬다 가는 사람이 승자다. 몸이 잔뜩 긴장하면 때를 밀어도 밀리지 않고 몸만 아프듯이, 인생도 긴장할수록 일을 그르치고 고통만 커진다. 그러니 힘들 때는 오히려 힘을 빼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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