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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평점 :
서른일곱 살의 영문학 교사 험버트 험버트는 열세 살 때 처음 사귄 여자친구 애너벨이 세상을 떠난 후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한 상태다. 이후에도 여러 여자(와 남자)를 사귀어 보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깊은 애정이나 욕망을 느끼지 못했고, 오직 애너벨과 처음 만나 사귀었을 때의 나이대인 열 살 전후의 여자아이들에게만 매력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성적 취향을 가졌으니 평생 외롭게 살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일체의 육체와 애정 관계를 단념하려 했던 그때. 새로운 하숙집의 열두 살 짜리 딸 돌로레스(롤리타)를 보고 그는 첫눈에 반한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1955년에 발표한 소설 <롤리타>는 삼십 대 후반의 남성이 십 대 초반의 여자 아이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낀다는, (2024년인) 지금으로서도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을 소아성애를 찬양하고 심지어 합리화하는 근거로 이용하기도 하는데, 소설을 여러 번 자세히 읽어보면 작가가 그러한 '오독'을 방지하기 위해 곳곳에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머리말에 소설의 화자인 험버트가 범법자로서 수감 중이라는 사실을 밝혀둔 것이고, 출간 후에 추가된 작가 후기 역시 험버트의 행위가 불법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 사실을 재확인 해준다.
사실 그러한 장치를 빌리지 않아도 화자인 험버트가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비윤리적인지 알 수 있다. 험버트는 이제 겨우 열두 살인 돌로레스가 자신보다 스물다섯 살이나 많은 성인 남성인 험버트를 유혹했다고 하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돌로레스를 차지하기 위해 돌로레스의 엄마와 위장 결혼하고, 돌로레스의 엄마를 죽게 하고, 돌로레스를 납치해 성적으로 착취한 것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남 탓, 상황 탓을 하는데 이는 모두 험버트의 일방적인 주장이기 때문에 신뢰하기 어려우며, 원인에 대한 책임이 없더라도(있지만)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돌로레스 입장에서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면, 열두 살 때 자신의 집에 하숙인으로 온 아저씨가 자신을 차지하려고 엄마와 위장 결혼한 것으로 모자라 엄마를 죽게 하고 자신마저 납치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성적으로 착취한 것인데, 어른으로서 이런 아이에게 죄책감은 물론이고 연민 내지는 동정심마저 느끼지 못한다면 심리적으로 큰 문제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한야 야나기하라의 소설 <리틀 라이프>는 험버트처럼 소아성애자인 남성에게 어린 시절 내내 성적으로 착취당한 소년이 주인공이다. 소아성애 피해자의 시점이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참고해 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