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의 분위기
박민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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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논문 제출을 앞두고 있는 유미는 대학 도서관 열람실에서 매일 같이 논문을 쓴다. 열람실에는 유미처럼 각자의 공부에 집중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인데, 단 한 사람만은 자신이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닌 다른 대상에 집중하는 것 같다. 그 대상은 바로 유미이고, 문제의 인물은 유미의 옆자리에 앉는 남자다. 처음에는 유미도 자신이 요즘 너무 바쁜 탓에 평소보다 예민해져서 착각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이라기에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떻게 매번 그렇게 유미의 옆자리에 앉는지, 유미를 지켜보는 느낌이 드는지... 이 느낌이 착각이 아닌 또 다른 근거는 유미의 과거와 관련이 있다. 


2020년에 출간된 소설가 박민정의 소설집 <바비의 분위기>에는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전술한 이야기는 표제작 <바비의 분위기>의 줄거리이다. 이 소설은 유미의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외동딸인 유미는 형제자매가 없는 대신 사촌 오빠와 가깝게 지냈다. 사촌 오빠의 방에는 신기한 장난감도 많고 만화책도 많았는데, 어떤 것들은 지금도 생각날 만큼 유미의 어린 시절 기억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착한 범생이 오타쿠인 줄로만 알았던 사촌 오빠에게서 조금씩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고, 결국 유미는 친오빠처럼 따랐던 사촌 오빠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기에 이른다.


이 밖에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불법 촬영물이 게재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은 <모르그 디오르마>, 미국에서 외국인들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그 모습을 담은 영상이 인터넷에 퍼져 곤욕을 치르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세실, 주희>, 한 여성이 외국으로 입양된 사촌 자매들의 방문을 통해 아들 딸 차별이 심했던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는 이야기인 <신세이다이 가옥> 등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성적 대상 혹은 재생산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그들로 인해 벌어지는 문제들을 다룬 작품들이 실려 있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여성이라면 무관하지 않고 무시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잘 읽혔고, 읽은 후의 여운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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