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담아
에이미 블룸 지음, 신혜빈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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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존엄사를 종종 접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존엄사를 선택한 인물에 관한 글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사랑을 담아>의 저자 에이미 블룸은 1953년생 작가이자 심리치료사이다. 중년 이후에 만난 브라이언과 재혼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온 에이미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일이 찾아온다.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예전과 다른 모습을 보였던 브라이언이 조발성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것이다. 진단을 받은 지 이틀도 안 되어 브라이언은 병이 더 진행되기 전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는 말을 꺼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에이미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에이미는 브라이언의 결정을 존중하고 전적으로 지지해주는 편을 택했다. 브라이언이 편하게 세상을 떠날 수 있는 동시에 에이미를 범죄자로 만들지 않는 방법을 찾다가 스위스에 있는 비영리단체 디그니타스를 알게 되었다. 디그니타스는 1998년 '존엄한 삶, 존엄한 죽음'을 기치로 내걸며 설립된 단체로 현재까지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에도 존엄사를 허용한 주(州)가 있지만, 말기 환자이면서 여명이 육 개월 이하라는 의사의 진단을 얻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들이 주로 디그니타스를 찾았다.


이 책은 2020년 1월 브라이언과 에이미가 함께 스위스 디그니타스를 방문해 존엄사를 실행하고 에이미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과, 브라이언과 에이미의 첫 만남부터 결혼과 알츠하이머병 선고,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 교차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존엄사를 선택한 남편의 결정을 지지하고 그 과정을 함께 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족의 자살을 방조하고 존엄사를 홍보하는 내용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할 만하기도 한데, 내가 보기에는 저자 자신도 남편의 결정을 지지하기로 한 자신의 선택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고, 남편을 원망하거나 남편을 말리지 못한 과거를 후회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외국의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보다 보면 적극적으로 존엄사를 택하지는 않더라도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보는데, 존엄사든 연명치료든 한국에서 슬슬 더 많이 논의되어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 알츠하이머병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는 브라이언이 정식으로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기 전에 보인 문제 행동과 그로 인해 생긴 자괴감, 주변 사람들에게 끼친 피해, 경제적 어려움, 신체적 위험 등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여러 의미에서 내가 더 이상 나로 살 수 없게 될 때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미리 생각해 보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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