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 타인의 고통이, 떠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양재화 지음 / 어떤책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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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교토에 갔을 때의 일이다. 교토 국립박물관에서 하는 전시를 보기 위해 열심히 걸어가다가 예상치 못한 장소를 마주쳤다. 그것은 바로 '미미즈카'. 한국어로는 '귀무덤'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대해 배울 때 왜군이 전공(戰功)으로 조선인 희생자들의 귀 또는 코를 베어 가져간 것이 무덤을 이루어 귀무덤이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바로 그 귀무덤을 그곳에서 실제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의 아픈 일면인 귀무덤을 찾아가 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일본의 박물관 구경이나 하려고 했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물론 일본에 갔기 때문에 귀무덤을 직접 본 것이기도 하지만...).


그 후로 외국 여행을 계획하거나 구상할 때마다 우리 역사와 관련된 곳이 있는지 찾아보고 기회가 되면 직접 가보는 습관이 생겼다. 외국의 역사와 관련된 곳을 직접 방문하는 일에도 관심이 생겼다. 기왕이면 밝은 역사보다는 어두운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 책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의 저자 양재화는 바로 그런 여행을 오랫동안 해왔다. 대학에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2년 간 세계 각지의 제노사이드 현장을 여행하고, 지난 6년에 걸쳐 이 책을 집필했다.


저자가 찾은 다크투어 여행지는 아르메니아 예레반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 기념관, 폴란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박물관, 캄보디아 킬링필드와 투올슬렝 제노사이드 박물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사라예보와 모스타르, 칠레의 기억과 인권 박물관과 아르헨티나의 오월 광장, 대한민국의 제주 4.3평화기념관과 북촌리 너븐숭이 유적지 등이다. 제노사이드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장소가 폴란드 아우슈비츠뿐이었는데, 세계 곳곳에 제노사이드 관련 장소가 있다니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큰 충격을 받았다. 


저자가 2016년 제주 4.3평화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겪은 일들이 특히 충격적이었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더 깊이 배우려는 마음으로 기념관을 찾은 저자와 달리, 기념관의 의미는 물론이고 4.3에 대해서는 더더욱 알지 못하는 듯한 모습으로 기념관 이곳저곳에서 몰상식한 발언 또는 행위를 하는 한국인들이 있었다니 내가 다 부끄러웠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제주 4.3평화기념관의 존재조차 몰랐던 내가 그들을 비난할 자격이 있나 싶고, 불과 몇 년 전까지도 4.3에 대한 교육은커녕 언급조차 금기시되었던 것을 떠올리면 그들의 탓만은 아니다.


여행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마음이 무겁고 슬퍼지는 일에 쓰는 것이 아직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행이 일상과 무관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다크투어를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타인의 고통이 떠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저자의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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