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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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자신이 오래 거주했거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공간을 배경으로 설정한 소설을 쓰는 건 멋진 일이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운명과 분노>의 작가 로런 그로프는 12년 간 거주한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쓴 단편 소설을 엮어 <플로리다>라는 소설집을 출간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플로리다에서 태어나고 자랐거나, 다른 지역에서 거주하다가 플로리다로 이주해 왔거나, 타지에 있으면서 자신이 떠나온 플로리다를 그리워 한다.


각각의 소설에서 플로리다는 단순한 공간적 배경이 아니다. 알다시피 플로리다는 미국 남부에 위치해 일 년 내내 따뜻하고 여름에는 극도로 습한 지역이다. 길가에는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팰머토 야자수가 심어져 있고, 뱀, 도마뱀, 악어 같은 열대 동물이 집 주변은 물론이고 실내에도 출몰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이러한 공간에서 산책을 하거나 캠핑을 하거나 집을 짓거나 가족을 만들며 다양한 일을 겪는다. 공간이 공간이다 보니 이들이 겪는 일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거나, 평범하게 보이지 않는다. 가령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가 아이들을 혼내고 집 밖으로 나왔을 때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이 어두운 잡목림과 도마뱀이 기어 다니는 길바닥이라면, 그 감정이 훨씬 더 끔찍하지 않겠는가. 


낮에 아들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나는 세상의 재앙에 관한 글을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생물처럼 죽어가는 빙하, 소용돌이치는 쓰레기장이 되어버린 방대한 태평양, 기록에 남겨지지 않은 수많은 종의 죽음, 중요하지 않은 듯 싱겁게 끝나버린 밀레니엄. 나는 읽는 것이 슬픔에 대한 내 허기를 얼마간 채워줄 것처럼, 그런 글을 읽으며 몹시 슬퍼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는커녕, 오히려 허기에 불이 붙는다. (18쪽)


로런 그로프가 여성 작가이고 여성의 삶에 관심이 많은 작가인 만큼, 여성이 주인공이고 여성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소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유령과 공허>는 두 아들을 키우는 여성이 밤에 혼자서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 공허함과 절망감을 보여주고, <미드나이트 존>은 캠핑 도중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남편을 대신해 자식들을 지켜야 하는 여성의 막막함과 어려움을 그린다. <살바도르>는 몇 년 째 어머니를 간병하고 있는 헬레나가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브라질의 낯선 도시에서 보내는 며칠을 담고 있는데, 이 또한 좀처럼 주목 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삶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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