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의 실패
강산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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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다, 좋은 대학에 가면 더 많이 할 수 있다, 라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아마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대학에 입학해 한 달 아니 일주일도 안 되어 깨달을 것이다.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다던 어른들의 말은 거짓이었다는 걸. 대학에 가도, 좋은 대학에 가도 뭐든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애초에 뭘 좀 해본 애들이 뭐라도 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


강산 작가의 만화 <루의 실패>는 이슬아 작가가 이 책을 2023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해서 알게 되었다. 주인공 루와 친구들은 서울 모처의 대학가 주변에 사는 이십 대 청년들이다. 전공 공부에도 취업 준비에도 전념하지 못하는 이들은 하루하루를 시덥잖은 일들로 채운다. SNS에서 유행하는 카페에 간다거나, 데이팅 어플로 원나잇 상대를 찾는다거나, (극장에 진득하게 앉아 영화 한 편은 못 보면서) 틱톡 영상을 몇 시간씩 본다거나 하는 식이다.


하루하루를 시덥잖은 일들로 채우는 이들의 마음이 결코 편하기만 한 건 아니다. 이들은 저마다 공황과 분노, 불안과 우울에 시달린다. 특히 친구들 사이에서 대장 역할을 맡고 있는 루의 경우가 심하다.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생활비를 받아 쓰는 루는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형편이 낫다. 하지만 루 자신은 일찍이 경제력을 갖추고 자신의 진로를 찾아 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극도의 불안과 열등감을 느낀다.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청춘들의 불안과 분노라는 흔한 소재를 다룬 만화인데, 소재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전개는 기발하고 참신하다. 루의 친구들 중 하나인 '블래키'는 인간이 아니라 개다. '종소수자'인 블래키는 친구들 사이에서 대체로 존중받지만, 이따금 친구들이 자신 앞에서 '개새끼', '개같다'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쓸 때마다 흠칫 놀라며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이런 일들이 쌓여서 어떤 식으로 관계에 균열을 내는지를 보여주는 섬세한 만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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