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니를 뽑다
제시카 앤드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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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럽 드라마를 보면 식이장애가 소재로 빈번하게 나온다. 식이장애 트리거를 경고하는 문구나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본다. 그에 반해 한국에서는 아직 식이장애에 대한 경각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아직도 여성 연예인들의 마른 몸을 칭송하며 의사들이 나서서 다이어트 약 광고를 한다. 대체 왜 여자들은 마른 몸을 원할까. 남자들은 왜 마른 몸의 여자를 원할까. ​

영국의 소설가 제시카 앤드루스의 신작 장편 소설 <젖니를 뽑다>의 주인공인 런던에 사는 28세 여성 '나'는 오래전부터 식이장애를 앓고 있다. 음식물을 전혀 섭취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극도의 허기를 느낄 때조차 포만감을 느낄 정도로는 음식을 먹지 못한다. 음식을 먹은 후에는 자신을 심하게 책망하며 거울 속 자신의 몸을 노려보거나 살을 꼬집는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

소설은 '나'의 생일날 '나'가 처음으로 ('당신'으로 지칭되는) 남자친구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날 이후 '나'와 남자친구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지만, 대학원생인 남자친구가 박사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바르셀로나에 있는 대학의 연구원으로 채용되면서 위기를 맞는다. 남자친구는 '나'가 자신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가기를 원하지만, 변변한 학위도 직업도 없는 '나'로서는 무리한 부탁으로 느껴진다.

​현재의 고민은 '나'를 자꾸만 과거로 밀어낸다. '나'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정신이 불안정했던 아버지와 그런 남편에게 경제력을 의존해야 했던 어머니, 두 사람의 불화와 이혼이라는 불우한 추억과 만난다. 제2차 성징을 겪으며 이성애자 여성으로서 자연스럽게 남성에 대한 관심이 생기고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구를 느꼈지만, 자신의 몸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고 때로는 희롱과 추행을 일삼는 남성들 때문에 스스로의 욕구를 검열하고 억제해야 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우리가 동경하는 여성들은 깡마르고 아름답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섹스와 마약에 대한 그들의 욕구를 과시했고, 너무 많이 먹지만 않는다면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이 세상의 모든 기쁨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로 놀기 좋아하는 젊은 여자들이었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아름다움과 현란한 클럽 조명을 위해 맛과 포만감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우리는 쾌락에 이르고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잡을 수 있도록 우리의 욕구를 참는 법을 배웠다. (91쪽)

종종 내가 젊은 여성이 아니라면 세상을 헤쳐 나가는 인생 항로가 달랐을지, 또는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졌을지, 또는 더 많은 힘을 가졌을지 궁금해지곤 했다. 덜 의식하고, 거의 생각하지도 않고, 단지 내 일부일 뿐인 육체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상상해 보려 노력했다. (156쪽)


소설 초반에 '나'는 남자친구가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확히 알고 있고 그에 맞춰 진로를 착착 진행하는 것에 대해 부러움을 넘어 질투를 느낀다. 그가 함께 바르셀로나에 가서 살자고 말했을 때에도 호의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는 '나'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이라는 걸 나타내는 신호라고 느낀다. 하지만 자신과 비슷하거나 자신보다 못한 처지였던 여성들이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 원하는 삶을 이뤄낸 걸 보면서 '나'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역시 사람은 일을 하고 여행을 해야 한다).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밝은 결말이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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