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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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에 '(MBTI) N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판타지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즐기고 나서 이에 푹 빠져 현실 세계에 마법이 진짜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걸 읽고 '그래서 내가 판타지 소설이나 영화나 게임에 좀처럼 몰입을 못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게 나는 MBTI상 N의 반대인 S성향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S라서든 아니든 판타지 설정에 좀처럼 공감하지 못하는 나지만,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마법과 마력이 존재한다는 설정만 제외하면, 이 소설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사회상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명목상의 계급은 없지만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 서울 사는 사람과 지방 사는 사람, 고학력자와 저학력자 등 다양한 기준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이에 따라 차별하고 혐오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허무한은 이런 세상에서 A-등급의 마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2001년 창원 출신. 바닷가에서 회를 팔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부모를 둔 자식으로서는 과분한 스펙이다. 이 스펙으로 한국에서 제일 이름난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 무한은 입학식을 치르기도 전에 좌절한다. 마력만 따지면 자기보다 훨씬 못한 아이들이 돈 많은 부모를 둔 덕분에 어릴 때부터 조기 교육을 받아서 자신과 같은 학교 같은 과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과 다르게 돈 걱정 없이 사는 동기들에게 열등감을 느끼던 무한은 자신의 마력이 엄청난 상품 가치를 지녔다는 걸 알고 위험한 선택을 내린다. 이 밖에도 마력 때문에 위기에 빠진 2군 야구 선수, 아버지의 뒤를 이어 마력을 연구하는 연구원인 딸, 마력을 상쇄하는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박해받는 여자의 이야기가 느슨하게 연결된 형태로 이어진다. 판타지의 힘을 빌려 현재의 한국 사회를 풍자하는 이런 소설이라면, S인 나도 앞으로 얼마든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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