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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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도 사람마다 관찰하는 것이 다르고 인식하는 것이 다르다. 이를 다르게 말하면, 어떤 사람이 관찰하고 인식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에르노의 산문집 <바깥 일기>는 외부 세계에 대한 관찰을 통해 저자 자신의 내면을 성찰한 기록을 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자아를 성찰하는 내면 일기보다 외부 세계에 자신을 투영하는 외면 일기, 즉 바깥 일기가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에 더욱더 적합하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쓰인 이 책은 1985년부터 1992년까지 7년에 걸쳐 '바깥 세상'을 관찰한 기록을 담고 있다.


저자의 시야에 들어온 것들은 하나같이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전철역 실내 주차장에 적힌 낙서, 객실 안에서 남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손톱을 깎는 청년, 엄마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는 아이, 계산을 틀려서 관리자에게 야단맞는 상점 직원 등 저자가 속해 있는 시공간과는 다른, 2024년 대한민국 서울에서도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어떤 모습은 저자의 시선을 통해 비범하고 특별해진다. 사이가 좋아 보이는 운동복 차림의 모녀를 보면서 저자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린다. 두 손이 화학 약품으로 망가진 아프리카계 남자를 보면서 저자는 (자신을 포함한) 지식인들의 손이 누구 덕분에 고운지 상기한다.


보이는 것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기도 한다. 저자가 다니는 전철역이나 기차역은 가난한 학생이나 노동자, 운전하지 못하는 여성이나 노인, 아이들이 주로 이용한다. 상점이나 슈퍼마켓은 일부의 상인이나 노동자를 제외하면 이용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자기 차가 있는 남성이나 부유층, 지식인 계급은 대중교통수단을 잘 이용하지 않고 상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일도 거의 없으며, 그러니 역이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숙인이나 거지를 마주칠 일도 드물다. 그러면서 가난은 사라졌다고, 빈부 격차나 양성 불평등은 옛날이야기라고 믿는 것은 어리석다는 지적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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