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에르노 - 이브토로 돌아가다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사람의집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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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작가 아니 에르노는 노르망디의 작은 도시 이브토에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실제 체험을 글로 쓰는 작가로도 유명한데, 그가 생애 초기의 기억을 형성한 장소인 이브토는 그의 글의 주요 무대이자 배경으로서 빈번하게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브토 시에서 공식적으로 아니 에르노를 초청한 것은, 그가 첫 책을 출간한 지 40년 만인 2012년의 일이었다. 이 책은 그때의 강연을 기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아니 에르노는 강연에서 자신의 화두는 결국 "글을 쓰면서 어떻게 나의 출신 세계를 배반하지 않을 것인가?"였다고 고백한다. 아니 에르노는 이브토에서 식료품 점 카페를 운영한 부모 슬하에서 자랐다. 아니 에르노의 부모는 농사를 짓거나 공장 노동자가 될 운명이었으나 하나뿐인 딸을 중상 계급 이상으로 키우기 위해 상인의 삶을 택했다. 아니 에르노는 부모의 바람대로(정확히는 어머니의 바람) 공부를 잘해서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대학 학위와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며 중상 계급 이상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출신 계급에 속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자신의 출신 언어와 지향 언어가 얼마나 다른지를 실감했고,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이론을 접하며 자신의 체험과 성취가 계급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그는 개인적 체험과 역사적 경험의 관계를 살피는 글쓰기를 시도하며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해부하는 동시에 개인의 삶을 재단하고 통제하는 사회의 폐부를 찔렀다.


이 책은 그러한 아니 에르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이미 알고 있는 독자에게는 새로운 발견이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다. 다만 작가로 데뷔한 지 40년 만에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초대를 받고 열렬한 성원 속에 강연을 하게 된 작가의 기쁨과 흥분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아니 에르노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사진, 친구에게 보낸 편지 등의 자료가 실려 있는 점은 새롭다. 기존 번역서의 의역 또는 오역을 정정하는 내용이 담긴 주석이 다수 실려 있는 점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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