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기다리기
박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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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로 일하는 '나'는 폴리아모리(다자간 연애)를 지향한다고 말하는 동성 연인 '너'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너'와의 관계를 끝낼 수는 없어서, '나'는 자꾸만 예전 직장 동료 '수경'의 SNS를 염탐하는 것으로 자신의 주의를 분산시킨다. '수경은 신입 편집자 시절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던 '나'를 받아준 고마운 존재다. 휴일에 따로 만나서 같이 놀 정도로 절친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수경의 갑작스러운 퇴사 이후 급속도로 멀어졌다.


동성애자 남성인 '나'는 이성애자 여성인 수경이 결혼사진은 물론이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소식 또한 아무렇지 않게 SNS에 올리고 지인들의 축복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낀다. 그런 수경과 달리, 자신은 연인과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릴 수도 없고 교제하는 사람이 있다고 지인들에게 알릴 수조차 없음에 우울해진다. 한편으로는 한때 가깝게 지낸 동료로서 수경이 누리는 행복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다. 좀처럼 정리되지 않고 남아 있는 이런 마음은 무엇일까.


박선우의 두 번째 소설집 <햇빛 기다리기>에는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박선우 작가의 첫 번째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에는 동성애자 화자도 나오고 이성애자 화자도 나왔는데, <햇빛 기다리기>의 화자는 모두 동성애자 남성이다. 대부분의 단편이 동성애자 남성 간의 연애를 그리지만 가족, 친구, 직장 동료, 학교 선후배 등 비연애적 관계를 묘사한 단편도 실려 있다.


첫 번째 단편 <남아 있는 마음>은 성향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는 사람과의 사귐이 가능한지 묻는다. 화자인 '나'와 연인인 '너'는 동성애자 남성이라는 점은 일치하지만 독점적 연애 관계에 대한 견해는 일치하지 않는다. '나'는 독점적 연애 관계는 물론이고 결혼, 임신, 출산이라는 루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수경을 부러워하지만, 시스젠더 헤테로 여성에 이제는 기혼 유자녀라는 타이틀이 추가된 수경과 자신의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나'는 자신이 사실상 수경과 같은 성향을 지녔으나 남성이라는 이유로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에 복잡한 기분을 느낀다. 


이 밖에도 팬데믹으로 인해 가벼운 만남조차 가지기 어려워진 동성애자 커플이 나오는 <사랑의 미래>, 동성애자인 아들과 엄마의 관계를 그린 <겨울의 끝>, HIV 감염인인 연인과의 여행을 앞둔 동성애자 남성의 심경을 묘사한 <우리 시대의 사랑> 등이 실려 있다. 대학원 시절 가깝게 지냈지만 이제는 소원해진 선배의 결혼식을 앞두고 과거를 회상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결혼식 가는 길>은 연인으로 사귄 건 아니지만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낸 사람에 대해 '남아 있는 마음'을 그린다는 점에서 <남아 있는 마음>과 결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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