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즘
브라이언 딜런 지음, 김정아 옮김 / 카라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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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K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서문 비슷한 글이 어려워서 계속 읽을지 말지 잠깐 고민하고는 계속 읽었는데,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보니 문제의(?) 서문 비슷한 글은 책의 전체 내용을 요약한, 일종의 목차 비슷한 글이었다. 그러니 글의 형식이 낯설다는 이유로 (나처럼) 어려울 것 같다고 지레 겁먹지 말고 끝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저자 브라이언 딜런은 196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더블린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한 후 영국으로 이주해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 시절 아카데미 글쓰기에 환멸을 느낀 저자는 롤랑 바르트의 글을 읽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견해와 사유를 자유롭게 펼치는 에세이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후 수전 손택, 에밀 시오랑, W.G. 제발트, 버지니아 울프 등 수많은 작가들의 에세이를 반복해 읽으며 자신의 글쓰기를 발전시켰다.


어떤 사람들은 "에세이란 평생을 작가로 살면서 도무지 한 가지 과제를 위해서는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핑계"라고 일축하지만, 저자는 에세이야말로 "무질서, 무의미한 세상에서 어떤 자세, 어떤 노선을 뽑아내"고 "상충하는 힘들을 교차시켜 상충하는 구심점들을 끝없이 만들어내는" 글쓰기라고 항변한다. 실제로 저자는 편당 최소 6,7백자의 글을 1년에 평균 73편씩 쓴다. 주제는 책, 영화, 음악, 일상 등 잡다한데, 잡다한 글도 모아놓고 보면 일련의 흐름이 보이고 맥락이 생긴다.


이 책도 그렇다. 이 책의 각 장은 사실상 저자가 그동안 읽은 에세이 작품들에 관한 리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리뷰들을 모아서, 각각의 에세이 작품이 담고 있는 특징이나 각각의 에세이 작품을 쓴 작가들이 이룩한 업적을 강조하여 에세이라는 상위 주제의 하위 주제로 정리(목록화)하니 에세이에 대한 훌륭한 개론서, 작법서로 완성되었다. 저자가 평소에 다양한 에세이 읽기를 '시도하고' 새로운 글쓰기를 '시험하지' 않았다면 이 책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참고로 에세이(essay)는 동사로 시도하다, 시험하다라는 뜻이 있다).


에세이는 저자의 우울증을 달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우울증 가족력이 있는 저자는 이십 대 초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부모 두 분을 연달아 여의는 고통을 겪은 후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특히 불면증이 심했는데,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밤이나 잠에서 깬 후 다시 잠들지 못하는 새벽에는 가벼운 에세이를 읽으며 고독을 견뎠다. 실제로 글쓰기와 우울증은 친밀한 사이인데, 글쓰기가 우울증의 원인인지 치료법인지는 불명확하다고. 나는 후자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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