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순의 말 - 글쓰기의 경이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김혜순 지음, 황인찬 인터뷰어 / 마음산책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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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의 '말' 시리즈를 좋아한다. 인터뷰를 통해 몰랐던 인물을 알게 되어서, 알았던 인물은 더 깊게 알 수 있어서, 신간이 나올 때마다 대상을 가리지 않고 구입해서 읽어보는 편이다. <김혜순의 말>은 김혜순 시인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구입했다. 수많은 한국의 문인들이 김혜순 시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아서 김혜순 시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고 그의 시집과 책도 읽어 보았지만, 시심이 깊지 않은 나에게는 오랫동안 멀게 느껴지는 존재였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김혜순 시인의 모든 시집과 책을 읽어보고 싶다, 눈으로 가볍게 훑어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사유하는 경지에 다다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1979년 <문학과지성>에 시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40년 이상 시를 써온 김혜순 시인을 후배인 황인찬 시인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와 시 창작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김혜순 시인의 개인사도 많이 담겨 있어서 전기(傳記)의 느낌도 난다.


서문에서 황인찬 시인은 "김혜순 시의 최종 심급이라 할 수 있을 '여성성'에 대해서는 장을 따로 할애하지 않았다."라고 밝히며 그 이유를 "저 모든 사유의 저변에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여성으로서 쓴다는 것'이라는 의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9쪽)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 시인으로 산다는 것과 시를 쓴다는 것만큼이나 여성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과 여성으로서 말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이 책에 따르면 여성으로 태어나 산다는 것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말하고 쓰는 것에도 수많은 억압과 차별이 작용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기본적으로 남성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따른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의 언어로 여성의 체험이나 생각,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상화, 타자화의 관습으로부터 자유롭기 힘들다. 그래서 김혜순 시인은 시 쓰기가 아니라 '시하기', '남자-인간-서구 되기'에 대항하는 '여자-짐승-아시아 하기'를 제안한다.


김혜순 시인은 삶과 죽음을 분리해서 보는 이분법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죽음은 '나'만의 개인적인 체험이 아니라 복수의 사람들이 함께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처럼 가까운 사람의 죽음뿐 아니라 국가적 재난이나 사고로 인한 죽음 또한 나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남긴다. 김혜순 시인에게 '시하기'는 이러한 고통을 언어로 형상화하려는 시도 너머의 그 무엇이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알 때까지, 김혜순 시인의 시와 글을 계속 따라 읽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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