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도시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41
조해진 지음 / 민음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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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최근작들을 읽고 조해진 작가의 팬이 된 경우라면 이 책을 읽고 놀랄지도 모르겠다. 일단 내가 그랬다. 조해진 작가의 소설이 지금도 막 밝고 경쾌한 느낌은 아니지만 그래도 최근작들을 읽으면 호의나 희망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 편인데, 이 소설집을 읽고 나서는 단절이나 절망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떠올랐다. 작가님이 이 시절에 이런 분위기를 선호하셨는지 아니면 그 당시 한국 문학이 대체로 이런 분위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책에는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저자의 데뷔작 <여자에게 길을 묻다>를 비롯해 일곱 편의 중, 단편이 실려 있다.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에 쓰인 작품들이라서 (2024년인) 지금 읽으면 약간의 시차가 느껴질 수 있다. 폭력에 대한 묘사 면에서 특히 그랬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중에는 폭력이 일상의 배경처럼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소설이 몇 편 있다. 남자친구는 여자친구를 때리고, 아버지는 자식들을 때리고, 교사는 학생들을 때리고, 상사는 여직원들을 희롱한다. 다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이의를 제기하는 쪽이 이상해 보인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이런 야만의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조해진 작가와 연결되는 작품들도 있다. 다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청년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 <천사들의 도시>는 프랑스로 입양된 입양아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감독의 이야기를 그린 장편 소설 <단순한 진심>의 원형 같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결혼 이민을 왔으나 현재는 주방 가구점에 사는 신세로 전락한 고려인 여성이 나오는 단편 <인터뷰>는 폐업한 가구점에서 몰래 생활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 <여름을 지나가다>와 유사한 모티프를 지닌다. 


데뷔작 <여자에게 길을 묻다>에선 저자가 이 때에도 소통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거인증에 걸린 언어 장애인 여성을 데리고 속초로 향하는 '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나'는 8년 간 동거한 남자와 최근에 사별했는데,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사회에 나와 매일 같이 노동을 해야 했던 힘든 시기를 말없이 함께 견딘 그를 잃고 막막해 하는 상태다. '나'와 동행하는 거인증 여성은 때로는 당장이라도 버리고 싶은 짐 같고 때로는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는 친구 같은데, 어쩌면 이는 목숨이나 인생에 대한 비유가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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