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체는 국가 기밀, 모쪼록 비밀 문학동네 청소년 68
문이소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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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정체는 국가기밀, 모쪼록 비밀>은 2017년 <마지막 히치하이커>로 제4회 한낙원과학소설상을 받으며 데뷔한 문이소 작가의 첫 SF 소설집이다.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고 앞의 세 편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는데, 네 번째 단편을 읽고 속절없이 울어버렸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살면서 가장 이루고 싶었던 꿈을 꾸면서 삶을 마감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 개발된다는 설정의 소설인데, 정말 이런 기술이 개발되면 좋겠다 싶으면서도 실제를 환상으로 대체하는 것의 윤리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다. 


다른 네 편도 좋았는데, 이 중에 가장 경쾌하게 읽힌 단편은 첫 번째로 실린 <소녀 농부 깡지와 웜홀 라이더와 첫사랑 각성자>이다. 2년 차 농부 깡지는 호우로 인해 엉망진창이 된 버섯 재배사를 복구하던 중 이상한 사람을 본다. 어렵게 구한 버섯 종균을 훔치러 온 도둑인 줄 알고 바로 달려가 붙잡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22세기 한반도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온 웜홀 라이더였다. 졸지에 미래의 후손들이 먹고 살 식량과 농사법을 전수하는 막중한 임무를 띠게 된 깡지. 가상이지만, 실제의 농부들도 비슷하게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두 번째 단편 <젤리의 경배>도 흥미로웠다.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무명의 화가 젤리는 어느 날 자신의 아이의 초상화를 그려주면 거액의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의뢰를 받는다. 의심이 무색하게도 바로 입금이 되어 서둘러 의뢰인의 아이를 만나러 갔는데, 알고 보니 의뢰인의 아이는 인간, 이 아니라 인공지능이었다. 인공지능의 초상화를 그려달라는 요구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그 인공지능이 자신을 '덕질' 해왔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생소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인공지능 기술이 지금보다 발전하고 보편화되면 이런 일이 불가능할 것 같지 않다. 


세 번째 단편 <유영의 촉감>은 선대로부터 '유영의 촉감'이라는 기억을 물려 받았으나 이를 온전히 계승하지 못해 단절자로 격하된 마요린이 유영의 촉감을 찾아 지구로 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시각뿐 아니라 청각이나 후각, 미각, 촉각으로도 기억이 전승될 수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이야기였다. 다섯 번째 단편 <봉지 기사와 대걸레 마녀의 황홀한 우울경>은 마녀가 아기 고양이를 납치한 줄 안 로봇의 이야기이다. 삭막한 세상에도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는 존재들이 있음을 상기하게 해주는 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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