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그릇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병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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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의 거장 마츠모토 세이초의 대표작 <모래그릇>은 1961년 출간된 이후 영화, 드라마로 여러 번 리메이크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일본 아이돌 그룹 멤버의 주연작이라서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어디서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몰라서 못 봤다. 그러다 최근 들어 예전에 읽은 마츠모토 세이초의 다른 작품들을 들춰보다가 <모래그릇>을 아직 안 읽은 게 퍼뜩 떠올라 바로 구입했다. 


읽어보니 와... 너무 재밌다. 60년도 전에 출간된 소설인데 이렇게 재밌다니. 심지어 범인을 아는데도 재밌다니...! 거의 마지막까지 범인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내가 아는 범인보다 더 범인 같아서, 나는 내가 20년 가까이 범인을 잘못 알고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그만큼 범인을 알아맞히기가 쉽지 않고, 범인을 알아내기까지의 과정이 엄청나게 스릴 넘치는데, 이렇게 잘 쓴 추리 '소설'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어떠려나. 범인이 누구인지 바로 보이는데(대체로 개런티가 제일 높은 사람이 범인이다) 괜찮나? 


소설의 시작은 이렇다. 1950년대 말 도쿄. 이른 새벽 운행을 앞둔 전차 밑에서 피투성이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경찰은 시체로 발견된 남자가 전날 밤 근처 싸구려 술집에서 젊은 남자와 술을 마셨다는 것, 일본 동북부 지방 사투리를 썼다는 것, 대화 중에 '가메다'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을 알아내지만, 이를 끝으로 수사는 오리무중에 빠진다. 결국 경찰은 수사를 접지만, 베테랑 형사 이마니시는 자신의 사비를 써가며 후배 형사 요시무라와 함께 수사에 매달린다. 


일단 소설의 주인공인 이마니시 형사의 캐릭터가 너무 좋다. 최근에 아르망 가마슈 시리즈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느꼈지만, 나는 (해리 홀레처럼) 음울하고 자기 관리 못 하는 형사보다 아르망 가마슈처럼 성실하고 일 중독적인 형사가 좋다. 이마니시는 전적으로 후자다. 그는 사건이 임의 수사로 바뀌었는데도 스스로 사비를 써가면서 사건에 매달리고, 집에서 아내와 대화할 때, 아들과 목욕탕에 갈 때에도 사건에 대한 생각을 놓지 않는다. 혹시라도 수사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신문이나 잡지 기사도 열심히 읽고, 실제로 그러한 노력들이 수사로 이어지는 점이 재밌었다. 


60년도 전에 출간된 소설인 만큼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부분이 많은데,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지금이라면 휴대폰 몇 번 만지면 해결될 일인데 이때는 휴대폰은커녕 전화가 없는 집도 많아서 형사가 직접 일본 동쪽 끝부터 서쪽 끝까지 다니는 모습이 신선했다. 신칸센이 생기기 전이라서 당일치기로 오갈 수 있는 거리를 야간열차 타고 힘들게 다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수사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편지로 연락을 주고받고, 도움을 받으면 반드시 답신과 함께 선물을 보내는 모습도 정겨웠다.


언론을 장식하는 유명 인사들의 부유하고 화려한 삶의 이면에는 부정과 타락이 있고, 그들의 삶을 뒷받침하는 가난한 노동자들이나 빈민들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사라지고 죽어가는 모순을 묘사한 점도 의미심장하다. 사건이 도쿄에 있는 전차 역에서 발생한 점, 전차 노선도와 시간표가 주요 단서로 쓰이는 점을 비롯해 이후 전개 과정 면면이 2023년에 출간된 다카노 가즈아키 소설 <건널목의 유령>과 상당히 닮았다고 느꼈다(오마주일까). 같이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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