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원 - 제20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137
김지현 지음 / 사계절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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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내내 나는 친구가 많았다. 학급 반장도 여러 번 했고, 동아리 활동도 활발하게 해서 다른 반인 친구들도 많았고 선후배와도 잘 지냈다. 문제는 대학교 때부터였다. 입학 후 학교 행사든 학과 행사든 동아리 활동이든 열심히 했는데 현재는 만나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 초,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도 연락이 거의 다 끊어졌다. 각자 사는 곳이 달라지고 몰두하는 목표가 달라졌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가끔은 아쉽고 허전하다. 그때의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우리는 무엇일까.  

김지현의 소설 <우리의 정원>을 읽는 동안 내가 정원의 나이였을 때, 그러니까 열일곱 살 고등학생 시절 생각이 많이 났다. 공교롭게도 나 역시 정원처럼 서울이 아닌 도시에 살았고, 남녀 공학이 아닌 여학교에 다녔다(심지어 정원의 학교와 똑같이 언덕 위에 있었다). 정원처럼 공부하는 틈틈이 책도 즐겨 읽었다. 무엇보다도, 정원처럼 덕질을 했다. 에이세븐과 비슷한 남자 아이돌 그룹이었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자컨'도 없었고 '스밍'도 못했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보고 돌려 들으며 열심히 좋아했다. 정원처럼 친구가, 가족이, 학교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때, 그들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 

정원처럼 그 시절의 나에게도 친구 문제가 있었다. 주영과 혜수처럼 나 빼고 둘이 더 친하게 지내서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달이처럼 내가 많이 좋아하고 의지했는데 갑자기 내 일상에서 사라진 친구도 있었다. 지은과 나현, 여레처럼 함께 덕질도 하고 책도 읽는 친구가 결국엔 생겼지만 뭔가 늘 아쉬웠다. 돌이켜 보면 문제는 나였다. 정원처럼 나도 덕질을 제외하면 나를 소개할 말이 부족했다. 덕질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원했지만, 덕질을 안 하게 되면 그 친구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불안했다. 더 이상 공통의 관심사가 없어도, 만나지 못하게 되어도 우리는 친구일까 궁금했다.

이 소설을 읽으니 그 시절의 마음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나를 내보이고 싶은 마음, 나를 감추고 싶은 마음. 친구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 모르는 채로 있고 싶은 마음. 혜수가 나오는 장면들은 개인적으로 많이 아프고 힘들기도 했다. 나에게는 정원과 혜수처럼 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가 있었다. 당시에는 아니었지만 그 친구도 혜수처럼 프로아나(pro-ana)였고,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내내 알고 싶었는데, 소설 속 혜수의 대사들을 읽으며 그 친구의 마음이 이랬을까 싶어서 안타까웠다. 더 큰일 나기 전에 혜수를 구하고 싶어 하는 정원의 심경에 깊이 공감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정원도 변하고 친구들도 변하고 그들과의 관계도 변하는 것이 마치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 정원은 주영, 혜수와 같은 반이고 함께 밥을 먹어도 덕질 얘기를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 달이와는 덕질 얘기도 하고 속마음도 나누지만 온라인 친구라서 직접 만나지 못해 안타깝다. 달이가 사라진 후 덕질 얘기도 하고 책 얘기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생기지만, 그만큼 주영, 혜수와 멀어진다. 언니 친구, 책방 주인 부부, 상담 선생님 등 또래 친구는 아니지만 친구의 범주에 들어가는 새로운 관계도 생긴다. 

이 과정에서 친구 사귀는 방법을 몰랐던 정원의 '스킬'이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정원은 이제껏 자신이 에이세븐을 좋아한다고 밝힌 적 없는 사람에게 자신이 에이세븐 팬이라고 밝힌다(그중 한 명은 영업에 성공한다!). 자신이 에이세븐을 좋아하듯이 다른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보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의 세계에 오로지 덕질뿐이었던 정원은 덕질로 자기를 표현하고, 덕질 외의 것들을 수용하는 법을 배운다. 언젠가 에이세븐이 해체하고 덕질이 끝나도 정원의 배움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배웠다. 철따라 내 안에서 피고 지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보듬어주는 '정원' 같은 사람이 되는 과정이 성장이고 인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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