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황모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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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고등학생인 진리는 빵집을 운영하는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가수 변진섭을 좋아하고 순정 만화를 즐겨 읽었던 진리의 엄마는 진리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진리의 생일은 엄마의 기일이기도 하기에, 진리는 자신의 생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탄생이 다른 사람, 그것도 사랑하는 엄마의 죽음으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하면 기쁠 리가 없기 때문이다.


2학년 개학 첫 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허둥대며 집을 나온 진리는 갑자기 강한 진동을 느끼고 어떤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새 담임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이 학교가 남학교였던 사실을 기억하는 아이가 있냐고 질문한다. 그러자 남학생 대부분이 손을 들었고, 원래는 남학생뿐이었던 학교에 '운 좋게 살아남은' 여학생들이 들어왔다며 분개하기 시작한다. 여자들이 운 좋게 살아남았다니 무슨 소리일까. 


진리와 진리의 절친 해라는 지난 학기까지 착하고 친절했던 남학생들이 돌변한 것에 위화감을 느낀다. 진리는 특히 자신의 남자친구인 훈우가 예전과 다르게 입이 거칠어지고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에 깜짝 놀란다. 항상 다정했던 진리의 아빠는 빵집을 그만두고 제약회사에 취직했다며 큰 집으로 이사한다. 화장하고 멋부리기를 좋아하는 같은 반 남학생 예준은 다른 남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사라진다. 다른 여자애들도 하나둘 사라지고 급기야 해라마저 사라진다. 


자신이 살고 있던 세계가 갑자기 달라진 것에 놀란 진리는 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처럼 위화감을 느끼고 원래 세계로 돌아가거나 전혀 다른 세계로 넘어가려고 애쓰는 다른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90년 백말띠의 해에 태어난 여자들이라는 것이다. 백말띠의 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드세다는 미신 때문에 태어나지 못하고 제거되었던 여자애들이 살아남은 세상과 그렇지 않은 세상은 어떻게 다를까. 작가는 그것을 다양한 상황의 평행 세계를 통해 표현한다. 


실제로 이 해에 엄마가 임신을 했는데 가족들이 셋째도 딸이면 안 된다고 해서 지웠다고 들었다. 만약 아들이었다면 아무 일 없이 축복과 환영 속에 태어났겠지. 아들 섬기느라 딸인 나와 (여)동생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했겠지. 안 지웠으면 자기 아들 힘들게 딸 셋 낳아 키운다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엄마 구박 많이 했겠지. 동생은 (나와 내 동생이 그랬듯이) 고추 안 달고 태어났다고 무시 당했겠지... 


어떤 이들에게는 읽는 내내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이야기를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단어로 일축하고 평가절하 할 수 있는 사람들 참 부럽다. 이들은 "세상 참, 태어나지도 않았던 애들이 활보하고 다니네." 같은 문장이 현실에서 누군가가 실제로 들어본 말이라면 날조라고 하겠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건 살인이 아니라서, 자기 자신의 영혼을 죽인 채 살고 있는 사람은 타인의 영혼도 쉽게 죽인다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119-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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