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이러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인소 클리셰.txt
왕기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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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 초반에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었다> 같은 인터넷 소설(줄여서 '인소')이 10대 소녀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 나도 10대 소녀였지만 (아이돌 그룹에 심취해 있어서) 인터넷 소설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 시절 인터넷 소설의 인기가 엄청났다는 것과 인터넷 소설 열풍을 주도했던 작가들의 사연이 인터넷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왕기대 작가는 귀여니 작가와 함께 인터넷 소설 열풍을 주도했던 작가이다. 저자가 인소 작가가 된 건 중학생 때의 일이다. 때는 전국이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2002년. 중학교 3학년이었던 저자는 친구가 직접 출력한 귀여니 작가의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를 재밌게 읽고 '제2의 귀여니'를 꿈꾸며 인소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소설이 데뷔작 <개기면 죽는다>였다. 연재한 지 한 달만에 개인 팬카페가 생겼으며, 1년 뒤에는 정식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하루 평균 5~6곳의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 메일을 받았다.


몇몇 출판사에서는 지방에 사는 저자를 만나러 일부러 찾아오기도 했다. 관계자들로부터 "선생님, 그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받았을 때, 저자의 나이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성공해서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 시절 저자는 행복하지 않았다. 가족과 친구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도 불편했고, 독자들의 악플 세례와 인소 작가 자격 미달 논란도 힘들었다. 한때는 즐거운 취미였고 인생을 바꿔준 재능이었던 글쓰기가 족쇄처럼 느껴졌다. 결국 저자는 절필하고 잠수를 탔다. 


현재 저자는 인소가 아닌 웹소설 작가로 활동 중이다. 인소에서 웹소설로 매체가 바뀌는 동안 독자들의 취향도 크게 바뀌었다. 인소 독자들이 열광했던 남주들을 요즘 독자들이 보면 '똥차 오브 똥차'다. 지나치게 해맑고 눈치 없는 여주들도 요즘 독자들 눈에는 '민폐'다. 우연을 남발하는 서사보다는 짜임새 있는 전개가 각광받는 시대다. 독자들의 눈이 높아진 만큼 작가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저자 역시 열심히 공부 중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소 시절의 감성이 그립기도 하다. 책에는 인소 작가가 정리한 인소의 공식, 나를 입덕시킨 작가들, 작품들 이야기가 가득 나오는데, 그 시절 인소 좀 읽었다 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공감할 것 같다. 한 시절 한 세대를 풍미한 인소라는 문화가 희화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흑역사가 된 것이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지금의 웹소설 열풍의 토대가 된 고마운 존재로 치하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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