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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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언 고닉의 <짝 없는 여자와 도시>도 읽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지만 모두가 공연을 한다>도 읽었지만, 정작 그의 대표작인 <사나운 애착>은 읽어볼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모녀 관계에 관한 책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각 잡고 읽으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주제라서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러다 북클럽 문학동네 이달책으로 이 책이 선정되어 약간의 강제 독서(?) 느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와 이 책...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달라도 많이 달랐다.


일단 저자 소개부터. 비비언 고닉은 미국의 페미니스트 비평가,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이다. 고닉은 1935년 뉴욕 브롱크스의 유대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책의 초반에 저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저자는 여섯 살 때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스무 가구가 사는 4층짜리 다세대 주택에서 살았다. 그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저자의 가족과 형편이 비슷한, 즉 사회적 지위가 낮고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일상생활을 이웃들과 숨김없이 공유했다. 심지어 옆집 부부의 성생활이 어떤지까지 속속들이 알 정도였다. 


저자의 어린 시절을 지탱한 건 두 명의 어른 여자였다. 한 명의 엄마였고, 다른 한 명은 이웃집 여자 네티였다. 네티는 엄마보다 어리고 결혼한 기간도 짧은, 한국으로 치면 젊은 새댁 같은 여자였다. 저자의 엄마와 이웃 아주머니들은 대부분 생활력 강하고 가족들을 열심히 건사하는 데 반해, 네티는 살림과 육아에 열의를 보이지도 않고 남편 아닌 남자들에게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기도 했다. 이웃들은 그런 네티를 안 좋게 보았지만 저자의 엄마는 네티의 편을 들어주었다. 심지어 저자는 엄마보다 네티에게 더 의지할 정도로 네티를 열렬히 흠모했다.


하지만 이후 어떤 사건으로 인해 엄마와 네티는 철천지원수가 되는데, 이런 걸 보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참 맞는다 싶고, 머리털 검은 짐승은 함부로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도 생각나고... (+ 아, 근데 저자가 이 시절에 같은 여자인 네티를 너무 좋아해서 레즈비언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남자랑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는 걸 보면서 아니구나 싶었다가, 결국 이혼하고 혼자 사는 거 보면서 뭐지 싶었다.) 


그렇게 십 대 시절을 통과해 이십 대가 된 저자는 더욱더 큰 혼란을 맞닥뜨린다. 엄마는 딸이 대학 시절 내내 조신하게 공부만 하다가 졸업 후 바로 교사가 되기를, 조건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랐다. 하지만 저자는 학교에선 매일 다른 학생들과 뜨겁게 논쟁했고, 학교 밖에선 수많은 남자들과 뜨겁게 연애했다. 졸업 후 교사가 되기는커녕 취직도 못한 채 예술가 지망생인 비유대인 남성과 결혼해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다 금방 이혼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와 엄마가 얼마나 싸웠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이후의 이야기도 드라마틱한데, 결론은 그렇게 서로 사납게 싸우고 애착했던 모녀도 함께 늙어가는 처지가 되고 보니 친구 같다는 것이다. 엄마가 없다면 옛날에 살았던 집과 이웃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에게 할까. 딸이 없다면 남편이 죽고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누구에게 할까. 엄마는 여든이 넘고 딸은 마흔이 넘은 지금도 종종 싸우고 며칠씩 연락을 끊기도 하지만, 동네에 맛있는 음식점이 생기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서로라는 이 모녀. 나도 이들처럼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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