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 전2권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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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프랑스 북서부의 항구 도시 생말로의 상공을 떠도는 독일의 폭격기들이 도시를 향해 폭격을 퍼붓는다. 같은 시각 생말로의 보보렐 거리 4번지에 있는 높고도 좁다란 집 맨 위 층에는 앞을 못 보는 열여섯 살 소녀 마리로르 르블랑이 숨어 있다. 어디 있는지 소식을 알 수 없는 아빠와 전날 밤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작은 할아버지를 기다리느라 집을 떠날 수 없는 마리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천천히 점자 소설책을 읽는다. 


같은 시각 생말로의 또 다른 거리에 있는 호텔에 진을 친 독일군 부대의 이등병 열여덟 살 소년 베르너 페닝은 폭격을 피해 지하실로 대피한다. 전기와 전파를 다루는 기술이 탁월해 엔지니어로 발탁되어 입대한 베르너는 독일군이 점령한 생말로에서 불법 방송을 하는 프랑스인을 추적해 색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진작에 불법 방송을 하는 주파수와 방송이 송출되는 위치를 알아냈지만, 눈 앞의 전쟁을 잊게 하는 희망의 메시지에 침묵을 택한다. 


앤서니 도어의 소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2015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최근에 넷플릭스 드라마로 제작, 방영 되면서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되었고, 나 역시 드라마를 먼저 보고 이 소설을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드라마도 좋지만 소설이 훨씬 더 좋다. 첫째로 소설에는 두 주인공의 전사(前事)가 훨씬 더 자세히 나온다. 마리는 선천성 백내장을 앓았지만 여섯 살 때까지만 해도 앞을 볼 수 있었다. 베르너는 광산 노동자였던 아버지를 광산 사고로 잃었으며 입대하지 않으면 자신도 아버지처럼 광산 노동자가 될 운명이었다. 


둘째로 소설에는 마리의 아버지의 뒤를 쫓는 독일군 룸펠이 찾아다니는 보물 '불꽃의 바다'를 둘러싼 전설의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불꽃의 바다는 원래 대지의 여신이 자기가 사랑하는 바다의 신에게 선물로 주려던 것이었다. 그런데 한 왕자가 강바닥에서 우연히 그걸 발견해 가지면서 여신의 진노를 사 자기는 절대 안 죽고 주변에 불운이 닥치는 저주를 받았다. 대지의 여신의 화를 풀기 위해선 불꽃의 바다를 원래 주인인 바다에 던져야 한다. 전설의 내용을 정확히 알면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왜 바다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셋째로 소설에는 베르너의 국립 정치 교육원 시절 절친이었던 프레데리크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드라마에선 베르너의 국립 정치 교육원 시절 장면이 아주 짧게 나오고 프레데리크에 대해선 언급도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프레데리크는 머리는 비상하지만 체구는 또래보다 한참 작은 베르너보다도 체력이 약하고 심성이 유순해서, 체격 좋고 성격이 험악한 대부분의 교육원생들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프레데리크는 전쟁에 찬성하지 않으나 생존을 위해 부역 중인 베르너의 죄의식을 건드리는 동시에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키게 해주는 중요한 인물이다. 


넷째로 소설에는 전쟁 중 여성들의 생활이 더욱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마네크 부인(드라마에선 에티엔의 누나였는데 소설에선 르블랑 집안의 하녀로 나온다)이 주도하는 할머니 레지스탕스 클럽의 활약을 통해 전쟁터에 나가지 않은 여성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적군과 싸웠음을 보여준다. 베르너의 여동생 유타는 전쟁 내내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소련군이 독일을 점령한 후 끔찍한 일을 당한다. 다행히 목숨은 부지해 전후 독일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그의 내면에는 전쟁 때 겪은 공포와 불안이 남아 있다. 


다섯째는 드라마보다 소설이 더 나은 점이 아니라 드라마가 각색을 잘했다고 느끼는 점인데, 이 또한 소설은 안 읽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일단 소설에서 마리는 직접 방송을 하지 않는다. 드라마에선 마리와 베르너가 마리의 작은 할아버지 에티엔의 방송을 들으며 자란 것으로 나오지만, 소설에선 마리의 할아버지(에티엔의 형) 앙리가 녹음한 방송을 에티엔이 송출한 것으로 나온다. 마리가 직접 방송을 하지는 않는 설정이 훨씬 더 현실적이기는 하지만, 단파 라디오 방송으로 연결된 두 남녀가 서로를 구하는 이야기가 주는 감동은 드라마 쪽이 더 잘 살린 것 같다. 


드라마를 봤어도 원작 소설을 꼭 읽었으면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말이다. 드라마의 결말을 보고 나는 나중에 마리와 베르너가 각자의 생활이 안정된 후 파리나 베를린 같은 장소에서 멋지게 재회하는 미래를 예상했다. 하지만 소설에서의 결말은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생각해 보면 베르너가 마음은 독일군에게 복종하지 않았다고 해도 결과적으로는 부역자이니 좋은 결말을 맞이하게 해주기가 작가로서도 힘들지 않았을까.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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